‘삐~ 삐~ 삐~’하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빨간 조명이 켜진다. 이윽고 티라노사우루스가 거대한 몸집을 드러낸다. 티라노가 괴성을 지르자 사람 손가락만한 이빨 수십개가 코앞을 스쳐지나간다. 미국 유니버셜사의 영화 <쥬라기 월드> 속 공룡이 국내에 나타났다. 이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백화점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6월 김포공항점 1층에 <쥬라기 월드 특별전>을 열었다. 미국에서 시작한 이 전시는 호주,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세계 다섯번째로 한국에 왔다. 전시장이 아닌 쇼핑몰에 들어온 것은 세계 최초다. 롯데백화점은 매장 1층 1980㎡(약 600평) 공간을 이 전시에 할애했다. 기존에 선글라스, 스카프 등을 팔며 매출을 올리던 공간을 전시장으로 바꾼 것이다. 백화점이 이처럼 전시에 공을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 쥬라기월드특별전. /사진=뉴스1 DB |
◆매장 내 즐길 거리 뭐있나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쇼퍼테인먼트’(쇼핑+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쇼핑과 함께 문화·여가·레저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하면서 손님몰이에 나선 것이다.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대형마트는 본업인 쇼핑을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늘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부터 매장 내 체험형 콘텐츠를 확대하고 있다. ▲건대스타시티점 VR테마파크 ‘몬스터VR’을 시작으로 잠실점에 ▲유아동 서점 ‘동서심당’ ▲사진 전시 및 스튜디오 공간 ‘291 포토그랩스’가 들어섰다. 이어 ▲명동 본점에 K-팝 복합문화공간 ‘팔레트’ ▲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에는 실내 서핑숍 ‘플로우 하우스’ 등을 오픈했다.
현대백화점은 놀이시설에 꽂혔다. 올해 ▲판교점 ‘미니 테마파크’ ▲목동점 ‘뉴트로 롤러스케이트장’을 운영한 데 이어 ▲신촌점 ‘넷마블 스토어’를 열었다. 넷마블 스토어에서는 ‘BTS월드’, ‘모두의 마블’ 등 넷마블 게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넷마블프렌즈 캐릭터 굿즈 구매도 가능하다.
장 보는 공간에 불과했던 마트도 달라졌다. 이마트는 지난해 9월 용인 죽전점을 시작으로 서울 왕십리, 영등포 등 5개 점포 내 일렉트로마트에 ‘게이밍숍’을 열었다. 일렉트로마트에서 판매하는 전자기기를 이용해 직접 게임을 해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롯데마트 잠실점은 지난해 판매점포를 정리하면서 ‘키즈 앤 패밀리 플레이그라운드’라는 체험형 매장으로 거듭났다. 건물 내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기존 1층에서 3층 규모로 확대하고 국제 롤러장, 실내 서바이벌장 등을 들여놨다. 기존 완구매장 ‘토이저러스’에는 비디오게임 체험 플레이숍, 조립완구 체험카페, 보드게임카페 등을 열며 체험형 콘텐츠를 확대했다.
| 이마트 은평점 일렉트로마트. /사진제공=이마트 |
◆쇼퍼테인먼트, 매출 효과 '톡톡'
유통업계가 저마다 엔터테인먼트 확장에 나선 이유는 집객 효과 때문이다. 과거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정해진 면적 안에 보다 많은 판매 공간을 넣어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온라인쇼핑을 시작하면서 한계에 직면했다. 손가락으로 쇼핑하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소비 트렌드는 싸고 편리한 온라인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 듣고 느끼는 체험형 콘텐츠는 온라인에서는 불가능한 오프라인만의 강점이다. 결국 엔터테인먼트 요소는 고객들이 오프라인에 나오도록 유인하는 장치인 셈이다. 이로 인해 고객들의 매장 체류시간이 늘어나면 매출 증대라는 선순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체험형 콘텐츠는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끌어 모았다. 롯데백화점 <쥬라기 월드 특별전>은 개최 이후 두달 만에 관람객이 10만명을 돌파했다. 이로 인해 김포공항점 방문객수는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롯데마트 잠실점은 지난 7월 체험형 매장으로 리뉴얼한 결과 주말 방문객수가 전년 동기 대비 11.4%, 10대 방문객수는 23.7% 늘었다.
신규 고객 창출 효과도 뛰어나다. 올 상반기 롯데백화점 건대점에서 ‘몬스터 VR’을 이용한 고객 중 신규 고객 비율은 46%였다. 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 ‘플로우 하우스’는 같은 기간 334명의 신규 고객을 유치하면서 1억1000만원의 매출을 확보했다. 신규 고객들은 체험형 콘텐츠 외 다른 상품군에서도 1인당 약 60만원을 소비하면서 전체 점포 매출 향상에 기여했다.
쇼퍼테인먼트 점포가 고객 체류시간을 늘려 매출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세계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과 대구 신세계점은 점포 내 체험 공간 비중이 각각 30%, 25%에 달한다. 이는 고객 체류시간과 매출을 백화점 전체 평균의 두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각각 지난해 여름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1%, 15.5% 늘어 매출 신장률(9.9%)의 두배를 웃돌았다. 고객 체류시간은 평균 5시간으로 전 지점 평균(2.7시간)보다 고객이 오래 머물렀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쇼핑 공간 비중은 앞으로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롯데마트는 직영 매장의 면적을 1.16㎢(35만평)에서 0.83㎢(25만평) 수준으로, 상품수를 4만5000여개에서 3만5000여개로 줄인다. 대신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하고 잠실점 외에 체험형 매장 후보지도 확대한다. 이마트도 연내 판교점과 킨텍스점에 게이밍숍을 추가 오픈할 예정이다.
백화점업계는 점포 리뉴얼을 위한 대대적인 공사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월부터 본점 리뉴얼에 돌입했고 현대백화점도 압구정본점·신촌점·미아점·중동점 등 4개 점포 공사를 실시했다. 신세계도 하반기부터 영등포점 공사에 들어간다. 이를 통해 기존 매장들을 복합문화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온라인시장이 강세이다 보니 상품,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고객을 끌어들일 수 없다”며 “매장에 더 많은 고객이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차별화된 콘텐츠와 체험공간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608호·6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