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속 장소를 찾아서’ ①길상사(서울 성북동)
무소유의 삶, 법정의 정신이 스며들다
| 길상사 극락전.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도 그렇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시주를 결심했다. 시주 규모는 건물 40여채와 대지 2만3140㎡로, 시가 1000억원이 넘었다. 대원각을 시주하려는 김영한과 무소유가 삶의 철학인 법정 스님 사이에 권유와 거절이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결국 법정 스님이 시주를 받아들이고 2년 동안 개·보수를 거쳐 길상사가 탄생했다.
| 법정 스님의 유골이 뿌려진 공간.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
◆대원각과 길상사, 높고 낮음이 없는 인연
길상사가 승보사찰인 송광사의 말사인 점이 재미있다. 전남 순천 송광사의 말사가 어떻게 서울에 있을까. 말사는 지역과 상관이 없고 법정 스님이 송광사 소속이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흔적은 길상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진영각에 있다. 전각에는 스님의 영정과 친필 원고, 유언장 등이 전시된다. 법정 스님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준비하지 말며, 승복을 입은 채로 다비하라”고 유언했다. 유골은 진영각 오른편 담장 아래 모셨다. 진영각 옆에는 생전에 스님이 줄곧 앉은 나무 의자가 흔적을 대신한다.
김영한은 기생 교육기관이자 조합인 권번에 들어 수업을 받고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입문했다. 1950년대 청암장이라는 별장을 사들여 운영하기 시작한 대원각은 군사정권 시절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영한은 대원각을 시주할 때 “그까짓 1000억원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며 한 치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 길상화공덕비와 사당.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
길상헌 뒤편에는 시주길상화공덕비가 있다. 길상화는 길상사 창건 법회 때 법정 스님이 염주와 함께 전해준 법명이다. 공덕비 옆 안내판에 김영한의 생애와 백석의 시 한편이 새겨졌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하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백석을 그리워한 김영한은 “내가 죽거든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유골을 길상사에 뿌려달라”고 유언했다. 김영한은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나타샤가 되고자 한 게 아닐까. 시를 읽고 있으니 김영한과 백석의 사랑이 이곳에서 이어지는 듯하다.
| 숲이 만드는 그늘이 많아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는 길상사.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
길상사 경내는 울창하지 않아도 숲의 느낌이 제법 진하고, 잘 가꾼 정원을 보는 듯하다. 보호수를 비롯한 고목이 많고, 철 따라 들꽃이 피고 진다. 곳곳에 있는 벤치도 이색적이다. 고목이나 계곡과 어우러진 숲에 놓인 벤치에서 길상사를 찾은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에 불교 서적과 일반 서적을 갖춘 길상사도서관을 만들었다. 도서관은 2016년에 새롭게 단장하면서 북카페 ‘다라니다원’으로 운영된다. 휴식과 독서 기능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차 한잔 마시면서 법정 스님의 글을 읽어도 좋다.
|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길상사 북카페 다라니 다원.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
◆길상사와 가까운 여행명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울 정릉(사적 208호)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이다. 정릉은 도성 내에 조성됐다가 태종 즉위 후 이곳으로 옮겨졌다. 현재 정릉은 내부 공사 중이어서 방문하기 전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
길상사에서 내려가면 선잠단지를 지나 큰길 건너편으로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등록문화재 268호)이 있다.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혜곡 최순우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저자로 유명하다. 앞마당에는 소나무, 모란, 산사나무 등이 있고 사랑방과 안방, 대청, 건넌방이 ‘ㄱ’자형으로 이어진다. 사랑방 위에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현판이 걸렸다. 문을 닫으면 이곳이 곧 깊은 산중이라는 뜻이다. 건물 뒤편에는 선생이 쓴 책이 놓인 돌 탁자와 장독이 인상적이다.
| 찻집 수연산방으로 탈바꿈한 상허 이태준가옥.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
우리옛돌박물관은 선조들이 빚어낸 돌조각 작품을 만나는 곳이다. 내부 전시실에는 일제강점기에 반출됐다가 환수한 문인석을 비롯해 동자석, 벅수 등이 있다. 표정이나 모습이 달라 하나씩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3~4층 야외 전시장은 옥상에서 숲을 따라 1층으로 내려오는 산책로다. 숲 곳곳에 무인석, 미륵불, 염화미소, 탄생불 등 다양한 석물이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거대한 민불이 인상적이다.
| 만해 한용운 선생의 흔적이 남은 심우장 전경.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
☞당일 여행 코스
길상사-우리옛돌박물관-상허 이태준가옥(수연산방)-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성북동이종석별장-만해 한용운 심우장-삼청각-한양도성(숙정문-말바위전망대)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날: 우리옛돌박물관-삼청각-만해 한용운 심우장-북정마을-길상사
둘째날: 한국가구박물관-상허 이태준가옥(수연산방)-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서울 선잠단지, 성북선잠박물관-성북동이종석별장-한양도성(숙정문-말바위전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