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무역분쟁' 여파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열기가 뜨겁다. 일본 제품 바코드명이 45나 49로 시작하는 것을 들어 일본산 제품 불매를 촉구하는 '49(사구)싶어도 45(사오)지말자'라는 캐치프레이즈까지 등장했다.

자본시장에서도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를 계기로 어려움을 겪는 업종에 투자하는 '애국 펀드'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소재·부품·장비 기업 육성을 지원하기 위한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펀드'에 정부 정책까지 뒷받침되면서 투자자들이 몰린다.

지난 8월26일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필승코리아 펀드’에 가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지난 8월26일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필승코리아 펀드’에 가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문재인 대통령이 투자한 펀드로 알려진 NH아문디자산운용사의 '필승코리아 펀드'가 단연 돋보이다. 이 펀드는 글로벌 무역여건 변화로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대표 소재·부품·장비 분야 기업에 투자하는 주식형 소부장 펀드로 올해 8월14일 시장에 첫선을 보인 상품이다.
이 펀드의 판매 수탁고가 꾸준하게 늘어나면서 다른 자산운용사들도 이 상품과 비슷한 콘셉트의 소부장 펀드를 뒤따라 내놓아야 할지 내부적으로 고심이 깊어진다. 하지만 일각에선 과거의 정권처럼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금융상품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행'타는 펀드상품… 소부장 펀드도?

최근 위축된 공모펀드시장에 필승코리아 펀드 등 소부장 관련 펀드가 화제를 몰고 다닌다. NH아문디자산운용사에 이어 금융투자협회도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원활한 자금 조달을 위한 1000억원 규모의 소부장 펀드 상품을 내놓겠다고 밝히면서 공모펀드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띄고 있다.


다만 정부 정책에 따른 '관치형 상품'들은 정권교체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면서 소부장 펀드도 같은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지난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는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탄소펀드, 자원개발펀드, 녹색성장 펀드가 우후죽순 쏟아졌다.

'녹색성장 펀드'의 최근 1년 수익률(지난 9월 기준)을 살펴보면, 플러스인 상품은 6개에 불과했다. 2009년 당시 녹색성장 펀드의 수익률이 58.6%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설정액도 50억원 미만 자투리 펀드도 11개(클래스 합산)로 전체(18개)의 과반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청년희망 펀드 1호 가입자가 됐다. 일시금으로 2000만원을 내고, 이후 다달이 월급에서 20%를 납입하기로 했다. 청년일자리를 돕는다는 취지로 시작한 청년희망 펀드는 기부금을 받아 은행에서 신탁형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청년희망 펀드는 정부의 코드에 맞추기 위한 '코드 펀드'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대통령이 돈을 내자마자 삼성·현대차·LG·SK 총수들이 줄지어 많게는 수백억원 적게는 수십억원을 기부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 뒤 이 펀드는 유명무실해졌다.

최근 NH아문디자산운용사의 필승코리아 펀드 등 소부장 펀드 또한 관치형 상품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펀드에 가입하면서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후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등 농업인 단체장을 비롯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주요 부처 장관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가입이 이어졌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소부장 펀드가 과거 정권의 관치형 금융상품들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품의 경우 초창기 수익률을 기록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듯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면서 "특히 펀드는 정부 정책에 따라 유행처럼 번지는 경우가 있기에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소부장 국산화가 제조산업의 필수 요소인 점은 감안하면 정부정책과 기업들의 투자가 꾸준히 이어질 것이란 반론도 있다. 지난 11월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하는 소재·부품·장비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소부장 특별법'으로 알려진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은 지난 7월 시작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 2001년 제정된 '소재·부품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개정안이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들이 소부장 국산화와 관련된 정책과 투자를 갑작스럽게 중단하거나 철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소부장 육성은 한국의 중장기적인 제조업 관점에서 큰 그림의 반향을 제시한다. 나아가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는 테마"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참가자가 일본제품 불매운동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지난 8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참가자가 일본제품 불매운동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애국펀드 마케팅'에 들썩이는 금투업계 

침체된 공모 주식형 펀드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필승코리아펀드는 눈에 띄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NH아문디운용에 따르면 지난 8월 출시한 필승코리아펀드 판매 수탁고가 1000억원(11월17일 기준)을 돌파해 설정 후 수익률이 6.98%(11월15일 기준)를 기록했다.
이처럼 출시 3개월 만에 7%에 가까운 높은 수익률을 거두고 있음에도 첫 취지에 맞지 않게 소부장 펀드가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NH아문디자산운용의 필승코리아 펀드의 경우 소부장 기업에 투자한다는 취지와 달리 소부장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닌 삼성전자, LG화학 등 제품생산에 소부장이 필요한 대기업 투자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9월 기준 소부장 펀드의 포트폴리오는 삼성전자(19.06%) LG화학(4.98%), SK하이닉스(4.98%), 한국전력(4.07%), 현대차(3.96%), NAVER(2.87%) 등 대형주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또 펀드 내 포토폴리오 비중에 대한 투자 가이드라인도 정해진 것도 없기에 펀드매니저 재량에 따라 운영된다.

이와 관련해 NH아문디자산운용 측은 "최초 펀드 설정할 때와 비교하면 대기업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소부장 테마에 속하는 기업의 비중도 50%를 넘어서고 있다"면서 "소부장 펀드에 대한 포토폴리오를 처음 만드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주가와 밸류에이션을 고려해 구성했다. 점진적으로 대기업이 아닌 소부장 관련 중소·중견기업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1호(2019년 12월3~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