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야심차게 선보인 간편결제 서비스 제로페이가 기대와 달리 성적이 초라하다. 출범 1년이 지난 현재도 전체 결제시장 점유율에서 미미한 영역을 차지한다. 상인의 수수료 부담을 줄이고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더하겠다던 처음 의도와는 달리 경제성과 편의성 모두에서 평이 좋지 않다. 최근에는 소득공제율까지 축소됐다. 한국판 알리페이를 꿈꿨던 제로페이는 최근 서비스 출범을 강하게 추진했던 서울시청 공무원들조차도 이용률이 저조한 실정이다. 제로페의의 현 주소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제로페이 성장통 1년 - 상] 면역력 떨어지는 제로페이



‘관치페이’ 오명을 받았던 제로페이가 민간의 품으로 돌아갔다. 지난달 제로페이는 민간법인 한국간편결제진흥원으로 새단장하고 직불결제망 회사로 도약을 선언했다.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은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관리, 플랫폼 운영, 상품권 판매 등 제로페이의 지원기능을 수행한다. 미션은 ‘세계최고의 직불결제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다. 카카오페이나 페이코 등 핀테크업체가 제로페이의 오프라인 결제망을 이용하면 고객은 신용카드가 없어도 QR코드를 찍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윤완수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이 제로페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윤완수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이 제로페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제로페이의 인프라사업에 시장의 반응은 곱지 않다.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탄생한 제로페이가 결국 민간시장에 플레이어로 등장해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제로페이의 인프라 구축에도 수억원의 세금이 들어가 ‘세금페이’ 오명을 벗기 어렵다. 결국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이 내세운 인프라사업은 공공기관에 일감 몰아주기에 그쳐 흥행을 점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인프라 구축에 또 세금페이

정부는 올해 60억원의 제로페이 예산을 책정했다. 인프라 구축과 홍보 등을 위한 76억원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넣었다. 세금으로 만든 서울시의 공공시설도 동원됐다. 서울시 의회는 제로페이로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최대 30%를 할인해주는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내년에는 정부의 업무추진비도 제로페이에 몰아준다. 경남도, 부산시, 전북 전주시, 경남 창원시 등이 법인 전용 제로페이 사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4곳을 거점으로 법인 제로페이 시범 테스트를 실시하고 내년 초에 일반 공공기관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과 간편결제 기업의 출연금이 들어간다. 현재 기업·농협·신한·KEB하나은행이 10억원 출연을 약정했고 우리·대구·부산·경남·전북은행 등도 2억~8억원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의 5년간 적자가 예상되는 가운에 매년 운영비로 정부의 보조금과 은행의 출연금이 100억원가량 들어갈 전망이다.

실탄을 확보한 제로페이는 가맹점 확보에 주력하는 동시에 정부부처, 공공기관 등으로 기업 제로페이를 확산할 계획이다. 공공영역으로 인프라를 확대하는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 부담 절감’이라는 당초 취지에 맞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제로페이, ‘세금페이’ 오명 벗고 ‘두마리 토끼’ 잡나
최근 국방부의 국군복지단은 군마트(PX)에 제로페이를 도입키로 한 바 있다. 모바일결제가 익숙한 20대 장병의 군내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된 만큼 군마트에 제로페이 시스템을 구축하면 결제가 활발히 이뤄질 것이란 기대다. 
현재 군마트는 공공기관 기준 제로페이 수수료율 0.5%를 적용받으나 소상공인보다 대기업 위탁판매업체가 많기 때문에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교육부의 차세대 에듀파인(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 제로페이를 연계한다. 2021년부터는 전체 교육청, 학교로 제로페이 시행을 확대한다. 정부는 제로페이 가맹점에 모바일 표준 QR코드의 사용을 확대하고 지방정부와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제로페이 사용실적을 반영한 공공기관 동반성장 평가지침 개정도 내년 3월까지 완료하기로 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정부가 나랏돈과 행정력을 무기로 민간인의 결제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가 탁상행정”이라며 “민간법인 출범에 세금을 투입하고 공공기관의 팔 비틀기식 방법으로 인프라를 확대하면 제로페이의 시장 안착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가맹점 확보 관건, 범용성 과제

국내 신용카드시장은 1978년 신용카드가 국내에 처음 출시된 후 급속도로 커졌다. 1980년대 은행권을 중심으로 카드영업이 확산하면서 1987년 ‘신용카드업법’이 제정됐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소비 활성화 및 세원확보를 추진하면서 신용카드 시장이 팽창했다. 그 후에 신용데이터 축적과 정보통신(IT) 기술 발전 등으로 결제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간편결제는 국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결제수단이 됐다.

경제전문가들은 제로페이가 간편결제에서 인프라사업 구축으로 방향키를 돌렸지만 제로페이의 생존 여부에 물음표로 답한다. 더이상 민간법인에 공무원을 동원해 가맹점을 유치하거나 세금으로 마케팅을 벌이기 어려운 뿐더러 40년간 자리잡은 신용카드 결제, 온라인 결제 행태를 단기간 바꾸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직불결제 인프라 구축도 과제다. 당장은 공공기관과 지자체에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나 가맹점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관건이다. 현재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페이코 등 공급자별 이용방식이 달라 모바일결제 수요가 더디게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와 판매자들은 공급자별 특정 앱을 이용해야 하거나 단말기를 보유하기 때문에 특정 가맹점에서만 이용 가능한 경우도 있어 중국 알리페이 등 간편결제 플랫폼의 편의성과 범용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심준석 무역협회 상하이지부장은 “제로페이가 직접 시장을 주도하기보다 민간 공급자를 위해 세제 혜택 등 유인책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당장은 중국 QR코드 모델을 따라가기보다 신용카드의 높은 보급률에 기반한 모바일 신용결제 서비스 등의 비즈니스 모델을 적극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은 가맹점이 100만개가 되면 시중은행과 전자금융사업자가 스스로 제로페이에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QR리더기 보급사업 활성화에 나섰다.

윤완수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은 “제로페이가 인프라를 늘리지 않으면 한국의 간편결제시장은 중국에 이어 베트남, 캄보디아에도 뒤쳐질 것”이라며 “신용카드 인프라 구축도 30년이 걸렸다. 정부의 정책지원과 페이사업자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3년 안에 QR코드로 결제하는 간편결제시장이 자리 잡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4호(2019년 12월24일~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