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30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이영환 기자 대선 앞두고 성과 강조하려 우방에도 통상압박 우려 “한국은 무역과 관련해 우리를 죽이고 있다. 그들은 무역에서 우리를 때려놓고는 ‘빌어먹을 영화’(기생충)로 아카데미를 가져갔다.”
지난 2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 집회에서 나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나는 한국과 잘 지낸다”면서도 한국과 통상문제가 있다는 점을 수차례 언급하며 한국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저격했다.
이 발언은 해외국가와 교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외교통상에 있어서 만큼은 적국과 우방을 가리지 않고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철저히 견지하겠다는 인식이 묻어나 있는 것이다.
◆대선 정국 접어든 美, 커지는 불확실성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대선정국과 맞물려 올 한해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최대 요인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미국은 오는 11월 3일 제46대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의지가 워낙 강한데다 최대 위협이던 탄핵 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낸 만큼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재선확률을 높여줄 ‘성과 창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또다시 주요 국가를 상대로 통상칼날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당선 직후 중국과의 무역이 불공정하다며 전쟁을 벌여왔고 한국에도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을 압박해 미국산 화물자동차에 대한 관세철폐 기간을 2041년까지 유예하는 결과물을 이끌어낸 바 있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2020 국제정세전망’ 보고서에서 올해에도 미·중 패권 경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미국 대선정국으로 인해 세계 정치·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태환 국립외교원 교수는 “대선 정국에서 트럼프는 미국 정치의 양극화 속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동맹 압박 정책, 대중국 강경책 등 기존 정책의 성과를 강조하는 한편 타 후보자들과의 차별성과 선명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중 강경노선과 관련해선 미국 정치의 어느 진영이든 관계 없이 어느 정도 컨센서스(의견일치)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미·중 경쟁은 그 범위와 정도에서 확산과 심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1단계 합의에 이른 미·중 무역분쟁이 언제든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앞서 미국은 지난 1월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등의 제품을 대규모로 구매하고 미국은 당초 계획하던 대중국 추가 관세 부과를 철회하는 한편 기존 관세 가운데 일부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는 내용의 1단계 합의에 서명했다.
1단계 합의에는 미국이 제기해오던 지식재산권 보호와 기술이전 강요 금지, 환율 조작 금지 등에 대한 중국의 약속도 담았다.
하지만 완전한 합의가 아닌 ‘임시휴전’인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지지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미·중 합의를 다시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열려있다. 세계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양국의 충돌은 결국 글로벌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수출 흔들?… 일각에선 신중론도 글로벌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겐 최대 위험요인이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입 비중이 2018년 기준 70.4%에 달하며 특히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수출의 대미·대중 의존도는 각각 13.5%, 25.1%에 달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무역분쟁이 불거지면서 한국은 직격탄을 받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미·중 무역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2019년 1~3분기 세계 총수출은 전년동기대비 2.94% 감소한 데 비해 한국 수출은 9.83% 감소하며 중국(-0.09%) 일본(-4.5%) 독일(-5.21%) 등 4대 제조국가 중 가장 큰 감소율을 보였다.
따라서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선 한국의 대외통상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정부가 공세적 대외통상전략을 펼쳐야 한다”며 “수출활용률 55%에 그치고 있는 한·중 FTA 상품양허 개정, 진행 중인 러시아·필리핀·우즈베키스탄 양자 FTA 협상 진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연내 타결과 WTO 다자통상통상체제 복원을 위한 국제사회와의 공조체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선 과도한 우려는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지지세력을 모으는 동시에 반대진영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한 위험성 큰 전략을 또다시 구사하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김영한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첫 대선 도전 당시 본인도 당선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험적으로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 통상전략을 펼쳤던 것”이라며 “현재 미국의 등록 유권자의 65%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전망할 정도로 위협적인 맞수가 없는 상황에서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미국 경기 흐름이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흔들릴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과거처럼 극단적인 보호무역정책을 재연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지금까지 실행한 정책들의 부작용을 관리하면서 반대진영의 목소리를 낮추는 데 집중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