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망사용료 문제를 놓고 법적 공방을 이어간다. 사진은 넷플릭스 PC버전 접속화면, /사진=머니S DB
#. 고속도로는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로로 운전자는 시설 공급자에게 통행료를 지급한다. 시설 공급자는 고속도로 운전자의 통행료로 고속도로를 유지보수하고 운용한다. 특정지역을 오가는 차량이 급증해 정체구간이 발생하더라도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별도 요금을 청구하진 않는다.

통신망 이용을 두고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맞붙었다. “국내 콘텐츠공급자(CP)처럼 정당한 통신망 이용료를 내라”는 SK브로드밴드와 “사용자가 지불하는 서비스 이용료 외에 CP가 별도의 요금을 내는 것은 이중 과금”이란 넷플릭스의 의견이 충돌했다.

고속도로 정체 주범은?




고속도로 사례에 대입해 보면 현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자체, 시설 공급자, 고속도로, 운전자, 별도 요금을 각각 CP, 망사업자(ISP), 통신망, 서비스 이용자, 망사용료 등으로 치환하면 된다. 콘텐츠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급증하면서 트래픽도 큰 폭으로 늘었으니 ISP가 통신망 정비에 투자할 수 있도록 CP가 망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다.

SK브로드밴드는 네이버, 카카오, 아프리카TV 등 국내 CP도 망사용료를 내는 만큼 해외사업자인 넷플릭스도 형평성에 맞게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의 현재 상황을 고속도로에 비유하면 ‘무임승차’라는 주장을 펼쳤다.

넷플릭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시설 공급자가 특정 지역에 대가를 요구하기 전에 울퉁불퉁하고 좁은 도로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용자가 ISP 사용료를 지급하는 상황에서 CP의 대가 지불은 이중 과금이란 목소리도 높였다.


수년간 계속되는 줄다리기에도 양측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지난해 말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을 요청, ISP 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듯했지만 올 들어 넷플릭스가 반격에 나섰다. 지난 4월13일 넷플릭스 한국법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해당 소송은 넷플릭스가 통신망 운영과 증설에 대한 대가를 ISP인 SK브로드밴드 측에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법원이 확인해 달라는 취지다. 전기사업통신법상 재정 과정에서 당사자가 소를 제기하면 방통위는 해당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 양측의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IT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 같은 해외 CP의 경우 외국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를 국내에 공급하다보니 한국 기업과 달리 ISP의 해외·국내 통신망을 모두 이용한다”며 “올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이용자가 급증한 것이 변수가 됐는데 CP나 ISP가 이 부분에서 각각 다른 입장을 보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SK브로드밴드가 보는 쟁점은 해외 CP인 넷플릭스에게 망사용료를 부과가 가능한지의 여부다. 그 근거로 양면시장과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을 내세웠다.

양면시장은 플랫폼사업자가 서로 다른 두 그룹을 매개하는 구조를 뜻한다. 신용카드사가 가맹점과 이용자에게 각각 수수료와 연회비를 받는 형태가 대표적인 양면시장 사례다. CP와 이용자는 통신망의 매개 없이 연결할 수 없어 매개하는 두 그룹으로부터 요금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방통위가 제정한 ‘공정한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CP·ISP 모두 신의성실 원칙에 입각해 협상해야 한다는 원칙도 고수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넷플릭스 등 OTT 관련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트래픽도 늘었지만 IT인프라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라며 “(망 증설 및 보완 관련) 선행투자돼야 하는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 규제기관에 중재 신청을 했는데 결국 법원 판단을 기다리게 됐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소비자에게 요금을 받는 ISP가 CP에게 망사용료까지 받는 것은 이중 부과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넷플릭스는 해외 지역에 서비스를 론칭할 때마다 현지의 하위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상위 ISP를 압박해 계약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SK브로드밴드의 주장도 반박했다.

국내 진출 당시 계획에 대해 넷플릭스 관계자는 “한국 진출 전 SK브로드밴드에 오픈커넥트(통신사망에 콘텐츠를 미리 저장해둔 캐시서버를 설치하는 방식)등을 제안했지만 해외·국내 통신망 이용 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며 “방통위 측이 넷플릭스가 협상의지가 없고 참여하지 않는다 지적했지만 오픈커넥트 등 다양한 협력방안을 꾸준히 제안해왔다”고 토로했다.

페이스북 사례 보면 안다?



CP와 ISP의 갈등이 깊어지는 사이 이용자의 불만은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SK브로드밴드의 넷플릭스 시청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용자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넷플릭스 사용량(데이터)이 급증했지만 유선통신망을 장기간 구축해온 KT나 제휴를 맺고 넷플릭스 콘텐츠를 공급하는 LG유플러스 통신망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넷플릭스가 매달 공개하는 ISP별 피크타임 접속속도 통계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LG유플러스가 3.94Mbps로 가장 높았다. 이어 딜라이브(3.59Mbps), KT(3.49Mbps), SK브로드밴드(2.25Mbps) 순으로 이어졌다.

일각에선 상호접속고시로 인한 모순과 해외망 증설 부족이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6년 도입된 상호접속고시는 ISP간 데이터를 전송해도 비용을 받지 않던 원칙을 폐기하고 관련 요금을 매기기로 한 제도다. 이를테면 SK텔레콤과 계약한 CP가 기타 통신망을 이용할 경우 SK텔레콤이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대상으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배경도 상호접속고시로 인한 피해를 예측할 수 없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CP 관계자는 “ISP가 해외사업자에게 주도권을 내준 이유는 이동통신사 상호 간 불신, 상호접속고시 제도의 모순, 협상력을 갖기 위한 해외망 증설 투자 부족 등 다양한 요인이 혼재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해외사업자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갖기 위해선 통신망 증설 규모를 확대하는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기초 체력을 만들고 싸워야 이용자도 납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3호(2020년 5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