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유례없는 공공기관의 백화점식 문어발경영.”
2010년대 익명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한국의 KDB산업은행을 이렇게 표현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 해체된 대기업그룹의 계열사들이 채권단의 경영정상화라는 명분 하에 내실 없는 빈껍데기로 전락,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비판이었다. 옛 대우그룹의 계열사들이 대표적이다.
최근 대우건설과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서울 반포주공1단지 3주구(주거지역) 재건축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이 업계 안팎의 이슈가 됐다. 시공능력평가(2019년 기준) 1위와 5위의 기업이 수주를 위해 상대 회사에 대한 비방과 고소를 일삼고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출혈까지 감수하는 무리한 경쟁을 해 파장이 컸다. 작은 파이마저 나눠야 하는 건설업계 불황이 원인이지만 한편에선 각종 수주사업마다 트러블메이커가 되는 대우건설의 막무가내식 영업에 눈총을 보내는 시각도 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면 대우건설은 ‘주인 없는 회사’의 설움이 있다.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전문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는 시기가 문제일 뿐 매각을 위한 주가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업계 1~4위인 삼성물산·현대건설·대림산업·GS건설 등이 오너 기업인 반면 대우건설은 언젠가 매각될 운명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산은은 당분간 매각보다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당장 주가가 오르기 힘든 환경적 요소를 고려한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시공단가 후려치기?
대형 건설업체 고위 관계자는 “매각을 앞둔 회사 입장에선 몸집을 키우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시공단가를 전체적으로 낮추는 저가수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마이너스마진 얘긴 들어본 적이 없다. 수익을 기대하지 않고 사업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대우건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대우건설이 참여하는 정비사업마다 과잉경쟁의 문제가 발생했다”며 “반포3주구에서 두 업체 다 주의를 받도록 조합에 권고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대우건설은 마이너스마진을 약속한 게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손해보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공사기간 동안 물가인상률을 적용하면 공사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포3주구의 경우 경쟁업체와 비슷한 공사비를 제안했지만 150억원 이상 증액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업가치가 높다고 판단하면 이윤이 낮아도 후속사업에 밑거름이 되는 것을 감안해 가격을 낮출 여지가 있다”며 “경쟁입찰에선 각 회사가 서로 다른 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이지 타사의 경쟁력을 문제삼는 건 말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너 회사면 오히려 더 싸게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매각 논란 의식하는 산은
이대현 KD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최근 반포3주구 입찰 설명회에서 대우건설 홍보영상에 출연해 “매각을 서두르지 않고 대우건설의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포3주구 조합 내에 대우건설의 매각 이슈가 약점으로 작용하자 이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현재 주가 환경이 악화됐지만 대우건설은 매각을 위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은 호텔과 발전, 부동산개발, 리츠운용 등 15개 자회사를 거느렸다. 대우ST와 푸르지오서비스, 대우파워 등 대우건설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는 곧 통합 후 상장도 추진할 계획이다. 대우건설의 자산규모가 커질수록 KDB인베스트먼트 입장에선 인수자를 찾기 힘들 수 있다. 자회사 통합은 이런 차원에서 분리매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김형 사장 취임 2년 새 ‘폭락한 주가’
김형 사장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포스코건설 등에서 부사장을 지낸 후 2018년 6월 대우건설 사장을 맡았다. 김 사장은 1978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국내 현장소장과 해외사업을 두루 경험한 건설통. ‘낙하산 인사’ 논란에선 자유로웠지만 주인 없는 회사의 숙명처럼 ‘주가 제고’라는 과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언젠가는 매각해야 하는 회사의 특성상 주주 입장에선 주가를 높여야 제값을 받고 팔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대우건설 주가는 6월1일 종가기준 6230원이었다.공교롭게도 김 사장이 취임 2주년을 맞는 올 6월엔 1일 종가 기준 주가가 3850원을 기록했다. 2년 새 주가가 38.2% 폭락한 것. 건설업종 주가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이유도 있지만 대우건설은 건설업체의 주요 경영평가 기준인 시공능력평가순위도 2018년 4위에서 2019년 5위로 떨어졌다. 그 자리엔 GS건설이 올라섰다.
대우건설 실적을 보면 국제회계기준(IFRS) 매출은 2018년 10조6055억원, 2019년 8조6519억원으로 감소했다. 올 1분기엔 1조985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은 2018년 6287억원·5.9%에서 2019년 3641억원·4.2%로 더 악화됐다. M&A는 더욱 멀어진 꼴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8호(2020년 6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