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추진에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 사진=뉴시스
정부가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법 개정이 자칫 시장 원리를 해치고 기업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는 외국 투기자본에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진다.

상법개정안, 투기자본 악용 가능성↑


법무부는 7월21일 상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마치고 자체 검토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등을 거쳐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8월 말이나 9월 초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임 및 대주주 3% 의결권 제한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도록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하는 제도다. 기업경영을 감시해야 할 감사위원이 거수기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주주총회를 통해 별도의 인사를 선출하자는 것이다. 특히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3%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일반주주도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지만 문제는 일반주주들이 서로 연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3%로 의결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일반주주가 연합할 경우 외국 투기자본에 자칫 경영권을 뺏길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외국자본이 국내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려 한 사례는 많다.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삼성과 현대차를 상대로 잇따라 경영권 분쟁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엘리엇은 2015년에 삼성물산 지분 7.12%를 사들인 뒤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반대하며 현물배당 등을 요구했지만 주총 표대결에서 패배했다. 지난해에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7조원의 배당을 요구하고 해외 경쟁사 임원을 감사·이사로 앉히려고 시도하다 무산된 바 있다.


2006년 칼 아이칸이 KT&G 주식 매입 후 배당확대를 요구해 1년도 안돼 1500억원의 수익을 챙긴 뒤 발을 뺀 사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투기자본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빈번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투기펀드 등이 3%씩 지분을 쪼갠 후 연합해 회사를 공격할 수 있고 그렇게 이사회에 진출한 후에 구조조정 등 각종 안건에 제동을 거는 방법으로 경영을 방해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 2004년 SK의 주식 14.99%를 가진 소버린이 펀드를 5개로 쪼개 2.99%씩 의결권을 모두 행사해 SK 경영권에 도전한 전례가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 사실상 ‘대기업 규제’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한 우려도 높다. 이 제도는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주주 및 경영진의 전횡을 막도록 견제장치를 두려는 것인데 경영책임을 쉽게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자칫 소송남발로 인한 경영활동 저해와 자회사 주주의 권리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모회사의 주주와 자회사의 주주가 각각 있는 상황에서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주주의 이해관계를 무시해 버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역시 재계의 반발을 산다. 개정안은 일감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대상 기준을 기존 총수 일가 지분 기준 상장회사 30%, 비상장 20% 이상에서 모두 20%로 일원화하고 50%를 초과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지주회사 지분율 강화와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확대는 제도 사이의 충돌의 여지가 있다”며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확대는 자·손자회사의 지분을 축소토록 하는 반면 지주회사 지분율 강화는 자·손자회사 지분을 높이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도 “현행 지주회사 제도는 기업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제도도입 및 지분율 상향을 유도해 왔는데 정책에 순응해 자회사 지분율을 높인 회사가 오히려 규제를 받는 정책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지주회사에 속한 계열사 사이의 거래에 대해서는 내부거래 규제의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개정안에 담긴 전속고발권 폐지도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 없이는 검찰이 기소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 검찰 자체 판단으로도 고발이 가능하다. 공정위 조사와는 별도로 검찰의 개별 수사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총 관계자는 “전속고발권 폐지 시 경쟁 사업자에 의한 무분별한 고발, 공정위·검찰의 중복조사 등으로 적지 않은 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불합리한 법령을 정비하겠다는 개정 취지는 이해하나 경영권 침해나 규제 강화로 인식돼 경영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