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취임 7주년을 맞이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그동안의 소회를 묻는 직원에게 한 대답이다. 재계의 대표단체의 수장으로서 지내온 지난 시간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내리는 대신 임직원의 몫으로 돌린 것이다. 과연 지난 7년은 박 회장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재계 대표단체로 우뚝
재계에서는 대한상의가 박 회장 체제에서 재계 맏형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고 평가한다. 기존에 맏형의 역할을 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위상이 급속도로 추락한 영향도 있지만 박 회장 취임 이후 대내외 영향력을 키우며 명실상부한 재계의 소통창구로 거듭났다는 게 중론이다.
박 회장은 전임인 손경식 회장이 2013년 7월 CJ그룹 비상경영 매진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한달 뒤인 8월21일 만장일치로 새 회장에 선출됐다. 이후 2015년과 2018년 두차례 연임에 성공하며 줄곧 대한상의를 이끌고 있다.
박 회장은 시작부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자리에 앉아 업무보고를 받는 대신 전국을 순회하며 지역상의와 상공인을 만나 직접 업계의 현안과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대한상의를 이끌어 나가는 데 필요한 조언에도 귀를 기울였다.
정부와도 소통을 확대하며 조금씩 단체의 위상을 키웠다. 그 결과 2015년부터는 정부가 주최하는 신년행사나 경제계 간담회를 대한상의가 도맡아 진행하고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함께할 경제사절단 명단에 박 회장의 이름이 가장 먼저 오르는 등 입지가 커졌다.
재계 맏형으로서의 위상을 굳힌 건 주요 기업이 국정농단 사태에 줄줄이 연루됐던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무렵이다.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의 분노로 재계에 대한 여론의 인식이 바닥을 향하던 당시 박 회장은 “경제계가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분식회계·편법상속·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관행을 반성하고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감시와 견제 강화에도 찬성하는 등 기업이 먼저 바뀌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상의가 우리나라 경제계의 진정한 대표단체”라며 정부의 공식적인 경제정책 파트너로 인정했다.
박 회장은 정부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업에 꼭 필요한 규제개혁이나 경제입법 처리가 미진하다고 판단되면 작심비판을 쏟아낸다. “경제는 버려지고 잊혀진 자식이다”, “경제 상황이 정치논리에 휘둘린다”, “격랑 속에서 흔들리는 처지에 있는 기업은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하나 정말 참담하기 짝이 없다”는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일방적으로 정부정책에 끌려가기보다는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에는 언제든 직언을 통해 재계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
노동계와도 협력 확대
균형은 박 회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지론이다. 그는 두산의 회장을 맡았던 2010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적당한 수준에서 현실과 교과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정치권에서 외교문제에 대한 책임공방이 벌어질 당시에도 박 회장은 “기업의 상황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번 사태가 대일 거래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기업별로 검토하고 대책을 세우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범국가적인 사안으로 생각하고 여와 야, 정부와 국회, 민과 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차분하고 치밀하게 대처해 나가면 좋겠다”며 균형을 잡는데 집중했다.
올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로 유례없는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기업의 해외사업 길을 열기 위해 정부와 협업으로 특별입국 통로를 만드는 등 위기극복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 회장의 노동계와의 소통도 확대하며 노사정 균형을 잡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2017년 9월 김주영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이 한국노총 위원장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대한상의를 방문하자 박 회장은 한 달여 뒤에 한국노총 본부를 답방했고 인근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겨 격의 없는 취중대화를 나눴다.
2019년 9월에도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나 또다시 맥주잔을 기울였다. 당시 박 회장은 “한국노총 화이팅”을, 김 위원장은 “노발대발”을 건배사로 외쳤다. 노발대발은 ‘노총이 발전해야 대한상의가 발전한다’는 뜻이다.
이를 계기로 박 회장은 노동계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유지 중이다. 지난 2월에는 새로 취임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미팅을 갖고 재계와 노동계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대화를 통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협력방안을 고민하자고 약속했다.
박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에 끝난다. 임기가 막바지로 향하는 가운데 박 회장이 또다시 연임을 통해 정부와 재계, 노동계의 균형추를 맞추는 조율가의 역할을 이어갈 지 주목된다.
☞프로필
▲1955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보스턴대학교 경영학 석사 ▲1982년 두산건설 입사 ▲1994년 두산음료 전무, 그룹기획조정실 부사장 ▲1998년 ㈜두산 대표이사 사장 ▲2005년 ㈜두산 대표이사 부회장 ▲2005년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부회장 ▲2007년~현재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회장 ▲2013년~현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