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택배비 현실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택배요금이 지나치게 낮아 택배기사의 노동에 제값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택배비를 올리더라도 택배기사의 몫이 얼마나 커질 지는 미지수. 택배비 인상이 노동자 처우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을까.
거꾸로 가는 택배비… 인상론 '솔솔'
국내 택배사업이 태동한 1990년대 초반 택배요금은 4000원대였으나 2000년대 업계가 출혈경쟁을 시작하면서 3000원대로 떨어졌다. TV홈쇼핑과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으로 물량이 급증하면서 업계가 경쟁적으로 단가를 낮췄기 때문. 그 결과 현재 택배요금은 2000원대로 고꾸라졌다.
국내 택배 단가는 해외와 비교할 때 4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택배 단가는 박스당 2269원으로 미국 페덱스·UPS 8달러(약 9000원), 일본 야마토 익스프레스 676엔(약 7300원) 등에 비해 턱 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에 택배 요금 인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도 택배비 인상을 감수하겠다는 반응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택배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요금 인상 필요성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요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5.7%(매우 필요하다 13.7%, 필요한 편이다 42.0%)로 나타났다.
반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39.0%(전혀 필요하지 않음. 12.7%, 필요하지 않은 편 26.3%)로 이보다 적었다. ‘잘 모르겠다’라는 응답은 5.2%였다.
택배사 입장에서도 택배비 인상은 반가운 얘기다. 배송 1건당 택배사의 순수익은 70원 수준으로 경영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게 택배사들의 주장이다. 업계 점유율 절반을 쥐고 있는 CJ대한통운은 자사의 영업이익률을 2.9%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으며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는 0.7%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택배 3사는 최근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분류 작업 인력 투입, 자동화 설비 투자 확대 등의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택배비 인상은 이런 투자 여력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택배 근로자 처우 개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냈다”며 “궁극적으로 운임 인상 가능성이 다시 커졌다”고 내다봤다.
택배요금 오르면 달라질까
다만 택배요금이 인상되더라도 현 구조로 택배기사 처우 개선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배요금은 판매자와 택배사, 대리점, 택배기사 등 총 4자가 나눠 먹는 구조여서다. 이들이 전부 나눠먹기 한 결과 택배기사가 가져가는 몫은 30% 수준에 불과하다.
고객이 내는 2500원의 수수료는 1차적으로 판매자의 주머니로 돌아간다. 주문 물량을 따내려는 택배업체 간 경쟁으로 인해 생긴 ‘백마진’ 관행이다. 택배요금 2500원 중 판매자에게 다시 비용을 돌려주는 백마진이 770원이나 된다.
백마진을 뺀 나머지 1730원 중 택배기사의 몫은 800~850원 정도다. 부과세 10%를 내고 나면 720~725원 정도가 택배기사 손에 남는다. 여기서 평균 10~15%, 최대 30%를 대리점에 수수료로 지불한다. 택배기사는 본사가 아닌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여서다.
결국 부가세와 대리점 수수료를 제외하면 택배기사가 손에 쥐는 돈은 535원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여기에 ▲차량 구매와 유지비 ▲물품사고(파손·분실)로 인한 지출 ▲경비(운송장·테이프·식대 등) 등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택배요금을 인상하면 어떨까. 만일 1000원 올려 택배요금이 3500원이 된다면 이중 30%인 1050원이 기사 몫이 될 것이다. 부가세 10%를 내고 나면 945원. 여기서 대리점에 최대 30% 수수료를 지불하면 실질 기사 몫은 661원 정도다. 택배요금 1000원을 올려도 기사는 고작 130원 정도를 더 받게 되는 셈이다.
"요금 인상 아닌 수수료 정상화"
전국택배연합노동조합 측은 택배요금 인상이 아닌 배송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내는 택배요금이 아닌 기사에게 주어지는 수수료를 올리는 방안이다. 백마진만 없애도 택배기사 수수료를 올릴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세규 전국택배연합노동조합 교육국장은 “고객들이 택배 요금으로 2500원을 내도 택배 단가는 1700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판매자에게 돌아가는 백마진으로 인해 배송 수수료는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측은 여권이 내놓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생활물류법)을 대안으로 보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생활물류법은 택배노동자의 과로방지와 휴식시간·공간 제공, 안전대책 마련 등을 골자로 한다. 백마진인 ‘부정한 대가의 지급 및 수취’를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김 국장은 “생활물류법이 통과되면 현재 비정상적인 수수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택배요금 인상, 즉 소비자 부담 없이 처우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