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에서 전세로 살며 내집 마련을 준비하던 직장인 A씨는 한숨을 쉬었다. 강남·강북, 고가·저가를 막론하고 빌라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에 실수요자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서 서민주택의 기능을 하던 빌라마저 투기 세력이 손을 뻗을까 우려되는 모양새다. 빌라 거품 사태의 현장을 직접 가봤다.
서울에서 집값 쌌던 은평, 지금은?
서울 서북부 끝자락 노후 저층주택 밀집지역. 집값이 싸고 서민이 살기 편한 동네라는 이미지를 지닌 연신내역은 수도권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의 환승역이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면 고층 빌딩이 아닌 낮고 낡은 건물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연신내역을 중심으로 한 은평구 불광동·대조동·갈현동 일대가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개발계획이 확정되면서다. 이 노선은 2024년 완공될 예정으로 서울 서북부 개발 최대 기대주로 떠올랐다. GTX 노선이 완공되면 연신내역에서 강남 삼성역까지 약 10분 만에 갈 수 있다.
연신내역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GTX 개통을 앞두고 빌라 매매가가 많이 올랐다”고 귀띔했다. 그는 “강서도 9호선 개통 이후 수억원이 올랐다”며 “연신내는 집값이 비싼 동네는 아니어서 갭투자(세입자 보증금을 끼고 주택을 매입)도 가능하다. 1억원에 사 2억원에 판 지인이 있다”고 부추겼다. 이어 매매가 5억원짜리 매물을 예로 들며 “도배·장판 등 수리에 약 1000만원이 들고 전세로 3억5000만원에 내놓을 수 있어 1억4000만원만 있으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달에는 같은 면적과 같은 층수의 매물이 3억2500만원에 나왔다. 2017년 이후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6억원대에서 9억원대로 50%나 급등한 반면 이 빌라는 3년 내내 800만원 상승해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었지만 불과 1년 새 2700만원이 뛴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비싼 아파트를 매매하는 데 제약이 있다 보니 대체재로 빌라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문제는 실수요뿐 아니라 투자수요까지 이동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빌라는 지난 6·17 부동산 대책에 포함된 ‘3억원 초과 아파트 매매 시 전세자금 대출 회수’ 규제도 예외다.
낭만적인 서래마을에 드라마틱한 빌라 폭등
빌라는 일반적으로 저가·서민주택 이미지를 지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정·재계 고위직이나 유명 연예인 등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선호하는 고급빌라는 오히려 아파트보다 훨씬 비싸 일반 빌라와는 구별된다. 이 같은 고가 빌라가 많이 몰린 대표적 지역이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이다. ‘도심 속 프랑스 마을’ ‘낭만적인 부촌’ ‘연예인 동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3호선 연신내역에서 35분을 달려 고속터미널역에 내리면 서래마을 인근이다. 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서래마을로 통하는 마을버스는 서초13이 유일해 조금은 외딴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평대로에서 남쪽으로 약 530m 형성된 골목이 서래마을 대표상권이다. 이를 중심으로 골목골목 빌라촌이 형성돼 있다.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분위기 및 아기자기한 상권의 편리함이 누구나 살고 싶은 느낌을 준다. 여유자금이 있다면 말이다.
직방 실거래가 정보에 따르면 서울 서래마을 인근 C빌라는 36㎡가 지난해 12월 3억1500만원(4층)에 거래됐다. 이달에는 34㎡ 매물이 4억2000만원(5층)에 매물로 나와 1년 새 1억원 이상 뛰었다. 35㎡ 매물은 지난 5월 2억8500만원(2층)에 거래됐다. 또 다른 D빌라 80㎡는 2017년 4월 5억5000만원(3층)에 거래됐고 올 7월 7억9000만원(2층)에 거래됐다. 이달 81㎡ 매물이 8억5000만원(3층)에 나왔다. 3년 새 3억원(54.5%)이 뛰어 아파트값 상승세를 뛰어넘는다.
서래마을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실거주 목적뿐 아니라 투자 용도로 매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투자가치가 높기 때문에 사서 전세로 놓는다”고 말했다.
‘무갭투자’까지 등장… 투기 전성시대
네이버 부동산과 직방 등 주요 부동산정보 플랫폼에는 매물 정보를 제공하며 ‘갭투자’ 조건을 홍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대놓고 갭투자를 추천하기도 한다. 매물 가치가 떨어지는 빌라를 팔아주겠다는 부동산 컨설팅업체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실정이다.심지어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아예 없는 ‘무갭투자’까지 횡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자 입장에선 가격이 오를 것으로 기대해 무갭투자를 하지만 실수요자는 전세금을 떼일 위험이 커지고 주거난을 악화시키는 문제가 우려된다.
토지·건물 실거래가 정보 플랫폼 ‘밸류맵’이 올해 7~10월(실거래가 신고일 기준) 경기 부천시에서 거래된 빌라 매물을 분석한 결과 매매거래 1965건 가운데 160건(8.1%)이 전세가와 매매가가 같은 무갭투자 또는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낮은 ‘마이너스피 투자’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은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무갭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연신내나 강서구 화곡동 등 서울 외곽의 신축빌라가 주요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빌라가 경매로 넘어가 낙찰률이 80%, 50%까지 떨어질 경우엔 전세금 회수가 어렵다”며 “가격 상승률 역시 비교적 정체”라고 경고했다. 이어 “가격이 상승할 땐 아파트 다음 빌라지만 하락은 빌라가 먼저다. 변동성이 크고 시세 파악이 어렵다”며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