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이 6년을 끌어 온 ‘담배 소송’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10일 건강보험공단은 케이티앤지(KT&G),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를 상대로 한 5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판결에 불복해 법원에 항소장을 접수했다.
공단은 1심 판결의 문제점을 확인한 뒤 내‧외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최종 항소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만간 공단은 항소심 진행을 위한 소송대리인 공개입찰에 나설 예정이다.
흡연으로 폐암… “보험급여 533억원 내놔라”
공단의 소송 배경은 이렇다. 2014년 담배의 결함과 담배회사의 불법행위로 3465명의 흡연자가 폐암 등에 걸렸고, 공단이 이들에게 보험급여로 533억여원을 지출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손해를 담배회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은 지난달 20일 나왔다. 승소를 기대했던 공단 측과 달리 결과는 공단의 완패였다. 법원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공단의 어떤 청구도 인정될 수 없다고 봤다. ▲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는 점 ▲공단이 흡연자들을 대신해 담배회사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년 이상의 흡연 경력이 있는 흡연자들이 폐암에 걸렸다는 공단 측의 인과관계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은 "공단이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해 재산의 감소 또는 재산상 불이익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설립 당시부터 국민건강보험법이 예정하는 사항으로서 원고가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흡연 선택은 자유… 폐암과 인과관계도 모호
구상권 인정 부분에 대해서도 “구상권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직접 피해를 본 ‘가입자(흡연자)'들의 담배회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먼저 인정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담배 회사들이 법령에 따라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문이나 청소년 판매 금지 문구를 담뱃갑에 표시한 만큼 표시상 결함이 없다”며 “흡연으로 니코틴 의존증이 생길 수 있다고 해도 흡연을 시작하고 계속할지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법원은 또 폐암 등 가입자들이 걸린 질병과 흡연과의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폐암은 흡연 외에도 새새인 생활습관이나 유전, 대기오염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발병되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폐암에 걸린 사례를 미뤄볼 때 담배와 폐암은 명확히 인과관계가 있는 질환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고 직후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판결”이라며 “담배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받는 게 쉽지 않단 걸 또 확인했지만 앞으로도 법률적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항소의 뜻을 피력했다.
시대착오적 판결 vs 소송으로 세금 낭비 말라
이번 담배소송과 관련된 업계 입장은 엇갈린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해외에서는 승소한 사례들도 있는데 우리나라 사법부가 담배회사에 면죄부를 주는 시대착오적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고, 보건의료계에서도 공단의 항소심 행보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반면 일각에선 ‘승산 없는 쓸쓸한 싸움’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담배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합의에 이르는 과정까지 수십년 걸린 사안인데 공단과 일부 전문가들만 쓸쓸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길 가능성이 낮은 싸움에 세금과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공단에 따르면 1심 소송에 들어간 변호사 선임비는 1억3000만원, 인지대는 1억6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