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2700선을 돌파하는 등 국내 증시에 초호황기가 찾아왔다. 개인투자자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들이 과거와 달리 '똑똑한 개미'가 됐다는 분석이다./그래프=김은옥 기자
#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몇 년 전부터 “노후준비를 위해 무조건 주식투자를 해야 한다”며 “월급쟁이는 주식을 통하지 않고는 노후를 준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3~4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웃어넘겼지만 이제는 귀를 기울인다. 그가 권하는 투자는 단기성 투기가 아닌 10~20년을 묵묵히 기다리는 장기 투자다.

# “만약 1만달러가 있다면 어느 회사에 투자할지 결정해 보세요.” 언뜻 투자회사에서 근무하는 펀드매니저에게 내려진 지시 같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의 한 초등교사가 학생들에게 낸 숙제다. 실제로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주식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차트로 만들어 제출하는 커리큘럼이 존재한다. 주식투자가 일상화된 미국이기에 나올 수 있는 모습이다.
주식 투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전문투자자만의 놀이터로 여겨지던 주식시장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뛰어들며 대중화가 이뤄지는 추세다. 특히 과거와 달리 유튜브나 인터넷 등을 통한 정보 습득이 유리해지자 ‘개미’(개인투자자)의 영리한 투자가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주식투자가 늘어나며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과거 투기판으로 여겨지던 주식시장은 최근 자산관리를 위한 장기투자처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여전히 단기 테마주에 몰려드는 개미가 적지 않지만 투자자 상당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된 언택트주와 반도체주 등 각광받을 종목주를 미리 전망해 투자하는 등 달라진 투자성향을 선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처럼 찾아온 증시 호황을 주식투자 활성화로 이어가기 위해선 공매도 제도 개편과 함께 개미가 주식투자를 투기보다는 자산관리의 영역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똑똑해진 ‘개미’ 늘었다

올 2월 2200선을 유지하던 코스피는 3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심화되면서 1400선까지 추락했다. 2009년 7월 1500선이 붕괴된 이후 최악의 수치다. 코로나19가 전세계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며 코스피가 1000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속출했다.

하지만 외국인의 매서운 매도 물량을 개미들이 받아내는 ‘동학개미운동’이 시작되며 증시 방어가 이뤄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한 달에 신설된 계좌수는 86만개에 달했다. 올 5월4일에는 개인이 1조6978억원을 순매수하며 1999년 이후 역대 최대치를 내기도 했다. 개인 순매수 강세 속에 코스피는 거침없는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결국 이달 2700선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사진 위) 지난 3월 코스피가 1400선까지 추락한 모습. (사진 아래) 지난 12월 11일 코스피는 2700선을 넘어서며 역사를 새로 썼다./사진=뉴스1DB

이들은 ‘동학개미운동’을 특별히 모의하지 않았다. 자산증식이나 저금리 상황에서의 대안책 등 저마다의 이유로 주식시장에 발을 디뎠을 뿐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의 매도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개미의 주식 매수는 결과적으로 코스피를 다시 상승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올해 주식 계좌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9월 기준 주식거래 활동 계좌수는 3503만2956개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 대비 567만24개 늘어난 수준으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의 신규계좌 개설수(618만개)에 버금간다.

증권가에선 동학개미운동 이후 확실히 개미가 이전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고 분석한다. 우선 자금력이 다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의 일 평균 거래대금(코스피+코스닥)은 올해 6월 20조원이었고 8월에는 25조원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말 6조원대를 기록한 것에 비해 몇 배 뛴 수치다. 일 평균 주식거래대금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60%선에서 75%대까지 급증했다.

주식투자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던 20대 투자자가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장혜영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20대 투자자의 신규 개설 증권계좌는 315만7376개로 지난해 144만478개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들은 주식을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실력을 갖춘 뒤 투자에 나서기 때문에 과거 외국인이나 기관투자자에게 농락당하는 모습을 쉽게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요즘 개인투자자의 모습은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에게 무력하게 당하던 과거와 다르다”며 “서적이나 인터넷, 동호회 등을 통해 정보 교류가 활성화되다 보니 ‘작전세력’에 당하지 않는 똑똑한 개미가 많아졌다. 다양한 정보력을 습득한 ‘양질의 개미’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IPO가 불 붙인 주식투자 대중화

똑똑한 개미가 늘어남과 함께 카카오게임즈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공모주 청약은 타오르는 주식투자 대중화에 불을 제대로 붙였다. 지난 9월 카카오게임즈의 IPO 일반 공모에선 역대 최대 증거금 등 각종 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불과 두 달 전 상장된 SK바이오팜 공모에 참여한 투자자가 쏠쏠한 수익을 거뒀다는 소식과 함께 ‘카카오’라는 브랜드 효과까지 더해지며 공모주 청약은 대흥행을 기록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역시 글로벌 가수로 성장한 BTS(방탄소년단) 덕분에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결정된 후 첫날 상한가)을 기록했다.

지난 10월 빅히트의 코스피 상장 모습./사진=뉴스1DB

이들 공모주의 경우 손실률이 커지며 ‘거품’ 논란도 생겼지만 대형 IPO가 주식투자 대중화에 기여했음을 부정하긴 힘들어 보인다. 카카오와 BTS로 대표되는 카카오게임즈와 빅히트의 IPO는 일명 ‘주린이’(주식초보+어린이)의 관심을 제대로 자극한 공모주 청약이 됐다. 주린이는 대형 공모주라도 손실이 생길 수 있음을 경험했다. 향후 대형 공모주 청약에서 개미가 ‘닥치고 청약’에 나서기보다는 보다 신중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증시 호황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나 ‘ 빚투’(빚을 내서 투자) 같은 신조어는 무리한 투자의 단면을 보여준다. 특히 젊은 층이 벌써부터 빚을 내가며 주식투자에 나서는 점은 우려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만 30세 미만의 신용융자잔고가 지난해 말 16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해 지난 9월 기준 4200억원으로 162.5% 폭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연령 평균 증가율 89.1%를 훨씬 넘어서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단기성 주식투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식투자를 자산관리의 한 영역처럼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단기성 주식투자가 아닌 연금처럼 장기간 투자해 수익을 내는 자산관리형태로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퓨리서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 절반 이상(52%)은 주식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인은 주식투자 대부분을 퇴직연금제도와 은퇴 계좌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미국인이 주식시장을 장기적인 노후대비에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공매도 재개되면 개인투자 ‘와르르’?

다만 모처럼 불붙은 개인 주식투자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공매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올해 개인투자가 활성화된 상태지만 내년 3월 공매도 재개 시 썰물처럼 투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일단 빌려서 매도한 후 주가가 실제로 내려가면 주식을 사서 갚는 차익 실현방식으로 주로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의 투자법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국내 공매도 거래대금 비중은 외국인과 기관이 62.8%와 36.1%인 반면 개인은 1.1%에 그치고 있다. 금융당국은 공매도를 전문투자자만 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한다는 입장이지만 개인투자자는 공매도 자체의 폐지를 원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주식시장은 여전히 저평가돼 있어 박스권을 형성하는 중이다. 저평가된 주가를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공매도 재개는 이를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며 “공매도 재개 시 외국인과 기관세력이 다시 득세해 개인투자자는 해외기업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 기업에 대한 개인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