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하지원 피아니스트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오직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에요. 내가 연주한 소리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는 자부심으로 피아니스트로 행복한 삶을 꾸려갔으면 합니다.” 
하지원 피아니스트(현 성공회대학교 음악학과 외래교수)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윽고 피아노 건반 위에 열 손가락이 쉴 틈 없이 움직이고 발은 장단을 맞춘다. 서로의 손이 건반에서 미끄러지듯 어우러지고 미세한 서로의 호흡을 읽어나가며 한 발짝씩 맞춰나간다. 

그 모습과 소리는 마치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땀 한 땀 맞춰 나가는 하지원 자신을 표현하는 듯 했다. 무엇이 그를 피아노로 이끌었고 그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세 번째 독주회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해 12월 어느 날 성공회대학교 음악원 연구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독주회 연습에 한창인 하지원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올해 6월 하지원은 인생 세 번째 독주회를 연다. 2020년 2월 미국 유학 후 귀국독주회를 연 그는 같은 해 12월 두 번째 독주회를 열었다. 올해 독주회에서 하지원은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곡 ▲환상작품집 ▲환상곡 등 두 곡을 연주한다. 

슈만의 작품에는 혼란한 세상과 동떨어진 고요와 평안의 세계, 꿈에서나 그려 볼 수 있었던 평화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환상작품집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곡이다. 


이 작품에는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희노애락’ 이 골고루 담겨있다. 평화롭기 그지없다가 천둥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분노·긴박함이 연출되는 가운데 몽상하는 인간의 모습이 표현되는 등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감정을 잘 묘사했다는 게 하지원의 평가다. 

하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생활을 돌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날 연습을 마치고 하 씨는 실제 독주회에서 연주하는 기분이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확한 연주 해석을 통해 강한 호소력으로 청중을 매료시키는 그의 연주에선 34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한 애절함이 느껴진다. 침착하고 차분한 그의 성격이 연주에도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하다. 하 씨는 말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연주할 때도 무척 신중하다.
./사진=하지원 피아니스트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경쟁력, 누구나 있다”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삶을 원한다”는 하 씨는 스스로를 “인간미 느껴지는 연주자”라고 표현한다. 부산예술고등학교와 부산대학교 음악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뉴욕주립대학교 석사,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 박사 과정을 마친 그는 학창시절 끈기 있고 성실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악기를 잘 다루면 학업 성적이 떨어지고 반대로 학업 성적이 우수하면 음악 실기 성적이 떨어지는 선배들을 보면서 둘 다 잘하고 싶었죠. 그래서 취침시간을 3시간 이하로 줄이고 학업과 함께 음악 실기에 매진했습니다.”

연주자 재능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제37회 전국 영남학생음악콩쿠르(1996년)에서 1등을 시작으로 제2회 음악세계 뮤직페스티벌(2001년) 입상까지 다양한 수상경험이 있다. 그는 이 같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을 유년시절부터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접한 것에서 찾았다.

그는 “작곡가이자 시인인 할아버지(하오주 선생)의 영향으로 집안에서는 항상 클래식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며 “그러한 음악적인 분위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며 피아노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주 실력과 꼼꼼한 성격은 무대 위에서 더 빛난다고 한다. 하 씨는 “작곡가가 작품을 만들 당시 시대적 문헌지식과 함께 작품이 지닌 의미를 연구해 작곡가의 의도를 늘 파악하려고 한다”며 “정확한 연주해석을 바탕으로 말하듯이 표현하는 것이 내 장점”이고 강조했다. 

피아니스트로서 사명에 대해 묻자 “수많은 연습과정을 거쳐 공연장에 찾아오신 한분 한분께 최대한 정제되고 깨끗하게 다듬어진 소리를 선물해드리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치고 따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휴식을 제공하고 싶다”며 “이러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이자 사명”이라고 덧붙였다.

후학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훌륭한 연주자여도 당신의 소리를 똑같이 따라할 수 없다”며 “내가 연주하는 소리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행복하게 연습에 매진했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