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1862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공급망 차질에 따른 경제성장 둔화 등 모두 이 총재 앞에 놓인 과제들이다. 그는 한은 내부 개혁으로 직원들의 사기도 끌어올려야 한다.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21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단기적으로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미 연준의 예상보다 빠른 통화정책 정상화,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중국의 경기둔화 가능성 등이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 회복세가 기존 전망보다는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성장과 물가 간 상충관계(trade-off)가 통화정책 운용을 더욱 제약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정책을 운용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인플레 파이터 나서야 하지만… 성장이 발목
인플레이션 압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국제유가는 물가 상승에 기름을 붓고 있다.지난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16.46(2015년 100기준)로 전월대비 1.3% 올라 2017년 1월(1.5%) 이후 5년2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올랐다. 전년동월 대비로는 8.8% 상승해 16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와 약 한달간의 시차를 가지는만큼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대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물가 상승 국면이 1∼2년 이어질 것"이라며 "물가 상승 심리(기대인플레이션)가 오르고 있어 인기는 없더라도 (기준금리 인상) 시그널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오르지 않도록 전념하겠다"고 약속했다.
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이 총재는 당장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나서야 하지만 성장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해 시중 유동성을 회수하면 이에 따른 경제 둔화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특히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세가 이어지고 중국의 성장둔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달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낮출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5%로 낮췄다.
이 총재는 지난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질의에 대한서면 답변을 통해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의 방역조치 강화에 따른 성장 둔화 우려 등 대외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물가의 상방 위험과 경기 하방위험이 동시에 증대돼 통화정책 운용함에 있어 어려움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달엔 경기가 회복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높은 물가 오름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물가안정 도모해 나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했으나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 앞으론 성장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함께 살펴보면서 정책을 결정해 나갈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1862조 넘은 가계부채 줄이고… 조직 내부 분위기도 다잡아야
늘어날 대로 늘어난 가계부채를 줄여야 하는 과제도 있다. 지난해 12월말 기준 가계빚은 1862조1000억원이다.이 총재는 "우리가 당면한 또 하나의 문제는 가계와 정부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늘어날수록 경제성장에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은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채의 지속적인 확대가 자칫 거품 붕괴로 이어질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우리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다"고 경계했다.
이 총재는 떨어진 한은 직원들의 사기도 끌어올려야 한다. 한은이 지난해 맥킨지에 의뢰해 진단을 받은 조직 건강도는 100점 만점에 38점에 그쳤다.
지난해 한은의 임금 인상률은 0.9%로 수년째 0~2% 수준을 머물고 있다. 이 총재는 취임식에서 "(직원들의) 힘찬 도약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개인의 동기부여와 조직의 성과를 위해서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나 보람 못지않게 인사·조직 운영이나 급여 등에 있어서의 만족도도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 예산이나 제도 등 여러 제약들로 인해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하나둘씩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한은 노조도 이 총재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한은 노조는 "설문조사에서 노조원의 56%가 이 총재 임명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며 "한국 경제의 변곡점에서 구조선 역할을 해야 할 중앙은행이 내부적으로는 침몰 위기에 봉착한 가운데 난파선을 정상화하는 구원투수로 한은의 위상과 직원들의 자긍심을 제고할 수 있는 존경받는 총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