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의 상품 도입으로 매출을 늘리려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기사 게재 순서
①본업은 어디로? 늘어나는 제약사 상품매출
②땅 짚고 헤엄?… 상품매출 포기 못하는 제약사
③"개발 만이 살길"… 제약업계 R&D 투자는


"상품매출은 별다른 노력 없이 회사의 외형을 키우는 데 좋은 전략이죠."


최근 만난 국내 한 제약기업 관계자는 상품판매를 왜 유지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상품매출은 제약사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제품이 아닌 다른 기업이 생산한 것을 유통·판매하는 것을 가리킨다. 글로벌 제약기업이 만든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기업 제품 중 특허가 만료되지 않은 오리지널 의약품이 국내 제약기업의 주요 타깃"이라며 "대부분 제품력만으로도 시장 판매가 보장된다"고 귀띔했다.

달콤한 상품매출의 이면

다만 같은 제품을 도입하려는 국내 제약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 수익성은 예전과 같지 못하다는 푸념을 늘어놨다. 상품매출 관련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시장에서 공급가를 높게 책정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물론 그 부담은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상품매출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요소로 판매수수료를 꼽는다. 국내 제약기업들은 글로벌 제약기업과 오리지널 제품을 도입하면서 수익 배분을 협의하고 계약기간을 결정한다. 이때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판매수수료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국내 제약사 수익이 확정된다. 판매수수료는 계약상 비공개가 원칙이나 통상적으로 국내 제약기업이 10% 내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최근에는 상품판매로 얻는 수수료가 10%에도 못 미칠 것"이라며 "A라는 제약기업에서 판매하던 상품이 B기업으로 판권이 이동할 경우 수수료에 변동이 있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면서 "판매수수료를 기존처럼 유지하려는 A기업과 더 낮출 수 있다는 B기업 사이에서 글로벌 제약기업의 선택은 뻔한 것 아니겠냐"며 "이 때문에 글로벌 제약기업이 한국 제약기업을 유통대행사처럼 상대하는 경향도 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제약기업들의 경쟁력을 평가하려면 상품매출을 떼어 놓고 자체 제품의 판매 비중을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매출 상위 15대 제약기업 대다수의 상품매출액은 증가세에 있고 전체 매출 대비 상품매출 비중은 40%를 넘는다. 쉽게 말해 연매출 1조원 규모의 제약기업에서 상품매출을 제외할 경우 자체 매출은 6000억원 수준에 그친다는 뜻이다.

한 동안 달콤한 것처럼 보였던 상품매출이 국내 제약사들의 발목을 잡은 사례도 있다. 판권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 매출 회복에 진땀을 뺀 경우다.

안국약품은 2015년까지 발기부전약 비아그라와 전립선비대증약 하루날디, 과민성방광증약 베시케어를 판매해왔다. 하지만 2016년 글로벌 제약기업이 이들 제품의 판권을 회수하면서 매출부진을 겪었다. 안국약품이 반납한 비아그라와 하루날디, 베시케어는 연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었다. 판권 회수 여파로 당시 안국약품의 매출은 1년 사이 12.0% 줄었다.

MSD백신 7종 판권 이동 사례. /인포그래픽=김은옥 기자

판권확보 경쟁… 상품매출은 독일까


그럼에도 상품 도입을 통해 매출을 늘리려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은 심화하는 모습이다. HK이노엔은 2021년 MSD와 백신 7종을 판매하는 코프로모션 계약을 체결했다. GC녹십자에서 판매하던 인유두종바이러스백신 가다실·가다실 9가 등 3종, SK바이오사이언스가 담당하던 폐렴구균백신 프로디악스23과 로타바이러스백신 로타텍 등 4종이 HK이노엔으로 모두 이동했다. 이 계약으로 HK이노엔은 단번에 1000억원 이상의 매출원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GC녹십자와 SK바이오사이언스 입장에선 판권 회수에 따른 수백억원의 매출 공백을 겪어야 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유한양행이 판매하던 GSK의 수막구균백신 멘비오 등 5종을 도입해 매출 공백을 채우는 데 주력했다. 전문가들은 상품매출의 역기능으로 국내 제약산업 전체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점에 주목한다. 안정적인 매출원 확보로 제약기업들이 유통에만 치중한 나머지 결국 신약개발 의지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다.

업계에선 상품판매의 순기능도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상품판매를 통한 외형 확대 전략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원천 기술이 미미한 한국 제약사(史)에서 신약개발 등 연구개발(R&D)을 위해 상품매출을 포기할 수도 없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제약기업들이 상품판매에만 열을 올린다고는 볼 수 없다"며 "최근에는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용도 꾸준히 늘리며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