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반도체사업(DS)의 위기극복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영현 부회장이 28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조직정비를 통한 분위기 쇄신,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 등에서 성과를 냈지만 남은 과제도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 부회장은 지난 5월21일 신임 DS부문장으로 선임됐다. 연말 정기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사업부문 수장을 교체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중대 기로에 놓여있었다.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만 15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올 들어 업황 회복에 따라 실적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AI 시대 핵심으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적기 대응에 실패해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반도체 수장 교체는 과감한 쇄신을 통해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당시 업계의 중론이었다.
전 부회장은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입사해 D램/플래시개발, 전략 마케팅 업무를 거쳐 2014년부터 메모리 사업부장을 역임한 최고의 '기술통'으로 꼽힌다.
전 부회장은 취임 직후 각 사업부로부터 현황 보고를 받고 조직을 재정비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HBM 개발력 향상을 위해 전 부회장 직속으로 HBM 전담 개발팀을 신설했고 설비기술연구소와 어드밴스드패키징(AVP) 전담팀을 축소해 메모리 분야로 인력을 재편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
그는 "직급과 직책에 관계없이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인정하고 도전할 것은 도전하며, 투명하게 드러내 소통하는 반도체 고유의 치열한 토론문화를 재건해야 한다"며 강도높은 쇄신도 요구했다.
전 부회장 등판 이후 일부 성과도 거뒀다. HBM 4세대 제품인 HBM3를 미국 엔비디아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AMD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퀄컴의 프리미엄 차량용 플랫폼인 '스냅드래곤 디지털 섀시 솔루션에 탑재되는 차량용 메모리 LPDDR4X에 대한 인증도 획득하며 본격적인 제품 공급을 시작했다. 퀄컴과의 차량용 반도체 협업은 이번이 처음으로 연내 차세대 제품인 LPDDR5를 양산해 퀄컴의 차세대 '스냅드래곤 디지털 섀시'에 공급할 예정이다.
과제도 여전히 산적해 있다. HBM 5세대 제품인 HBM3E는 아직 엔비디아 퀄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경쟁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3E를 사실상 독점공급 하는 상황이지만 삼성전자의 공급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이르면 이번 3분기 중 HBM3E 8단 공급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SK하이닉스로부터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해선 고용량 제품인 HBM3E 12단, HBM4(6세대) 등 차세대 제품에서도 앞선 성과를 보여야 한다.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대만 TSMC와의 격차 좁히기가 과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분기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3%로 1위인 TSMC(62%)와 49%포인트 차이가 난다. 삼성전자는 3나노 2세대 공정 양산과 고객사 확대로 추격에 나설 방침이다.
내부적으로는 '노조리스크'라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는 임금인상률 등의 문제를 놓고 사측과 대립하고 있다.
전삼노는 조합원 수 3만6000여명을 삼성전자 내 최대 노조로 임단협이 차질을 빚자 지난달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이달 초 현장으로 복귀했지만 앞으로 게릴라식 파업을 진행하며 장기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등이 중요한 분기점을 맞이한 상황에서 노조리스크가 확대될 경우 생산 차질에 따른 공급 안정성 및 고객사의 신뢰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전 부회장은 지난달 노조 집행부를 만나 직접 면담에 나서는 등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향후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봉합할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