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발표할 때도 연단에 홀로 올라 일방적으로 '훈화'를 전하는 게 아니라 주요 임원들과 함께 편히 앉아 직원들과 질문을 주고받는 '타운홀 미팅'이 대세다. 행사가 끝나면 직원들과 어우러지며 '셀카'를 찍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는 여전히 만나기 어렵고 사실상 소통이 불가능한 '회장님'일 뿐이다.
세계 1위 자동차회사 토요타의 토요다 아키오 회장은 회사 안팎에서 거침없는 소통 행보로 유명하다. 지난달 일본에서 개최된 WRC(월드랠리챔피언십) 2024 시즌 마지막 경기인 '재팬 랠리' 현장에서도 그의 소탈한 모습은 화제였다.
대회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부터 현장을 방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의 만남을 비롯해 주요 일정을 소화했다. 당일 오전 현장에서 마주친 그는 한국에서 온 기자단과 즉흥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현대차도 잘하고 있으니 응원하는 기사 많이 써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후 아키오 회장은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토요타 팀 컨트롤타워에서 크루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봤다.
대회 결과가 집계된 이후 시상식 진행 전까지 스타디움 일반 관람석에 앉아서 대기했다. 그를 알아본 이들의 사인 요청이 잇따랐고 'morizo'(모리조)를 적는 그의 손은 분주했다. 이어진 '셀카' 요청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경기장 바깥의 토요타 팀 쇼핑 부스에서 '모리조' 인형과 노트 등 관련 상품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그의 행보를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됐다.
1956년생인 그는 올해 68세다. 무거운 이미지의 토요다 아키오 회장 대신 열정 넘치는 '모리조'라는 '부캐'로 활동하고 있다.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이 차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르망 등 모터스포츠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모리조라는 닉네임은 그가 과거 몰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택한 것이었지만 현재는 그가 격의 없이 소통할 때 활용하는 일종의 '브랜드'가 됐다.
회사 내에서도 그의 실수를 '스토리텔링' 요소로 활용한다. 아키오 회장은 2017년 토요타가 WRC 재참가를 앞두고 개발하던 랠리카 시제 1호기를 직접 몰고 테스트에 나섰다가 차를 박살냈는데 부서진 상태 그대로 연구소 로비에 전시해놨다. '모리조가 사고를 낸 차'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현재 글로벌 경제 위기 속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영향이 우려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여전한데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도전도 좌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거세지고 있다. 수많은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이 공장을 닫고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토요다 아키오 회장은 어떤 문제든 해결책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굳건한 경영철학을 지닌 인물로 유명하다. 전 세계 자동차업계가 '전기차'(BEV)에만 매달릴 때 가장 자신있는 '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다양한 파워트레인 선택지를 강조한 '멀티 패스웨이'(Multi Pathway) 전략을 구사한 게 대표적이다. 전동화의 본질은 '탈탄소화'라는 점을 꿰뚫은 것. 현재는 수많은 업체들이 BEV보다 '하이브리드'에 힘을 싣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경쟁업체와 과감한 협력으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구사한다. BMW와는 고성능차 개발 협력을 이어가며 이미 결과물을 내놨다. 현대차그룹과는 수소생태계와 로봇 등 미래 먹거리를 위한 협력을 시작했고, 모터스포츠 협력을 통해 아시아지역 자동차산업 발전을 이끌기 위한 밑그림도 그렸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회사 내에서 소통은 기본,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소탈한 모습으로 상황을 마주하는 '토요타 회장의 팬 관리'는 지난 100여년 중 가장 급격하게 성장통을 겪는 자동차업계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10년 뒤, 그의 행보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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