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하루만에 입장문을 냈다. 그는 좌절과 고난을 겪은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했지만 비상계엄은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군이 국회에 갔기 때문에 내란이라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니다. 뭉치고 일어서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지지층을 향한 결집을 호소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다"고 호응했다. 절연할 대상은 '대통령과의 절연'을 앞세워 당을 갈라치기하는 세력이라며 '윤 어게인' 세력과의 연대도 시사했다.
민주당은 사형이 선고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며 사법부를 향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정청래 대표는 "판사가 세상 물정 모르고 국민 정서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판결을 했다"며 결론적으로 조희대 사법부를 그냥 둘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종 논란 속에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사법 3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지도부 내에선 "조희대 대법원장이 탄핵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는데,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한층 커진 분위기다.
결국 여야 모두 진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누가 뭐래도 비상계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국민들이다. 법원도 이번 판결에서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분돼 극한의 대립을 겪고 있다며 사회적 비용을 산정할 수 없는 피해라고 지적했다. 갈라진 국민 마음을 다독이고 미래로 가는 길을 찾는 게 정치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새 출발은커녕 갈등과 균열을 동력으로 삼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무엇보다 헌재의 탄핵 심판에 이어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는데도 여전히 현실을 외면한 채 투쟁 운운하는 윤 전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내외 상황은 엄중하다. 관세를 내세운 미국의 투자 압박이 거세고 중일 갈등으로 인한 안보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이다. 청년 일자리, 부동산 공급, 행정통합 등 국내 이슈도 산적해 있다. 이처럼 현실의 과제는 쌓여만 가는데 정치권만 과거의 전선에 묶여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최근 방송사의 설 여론조사에서 여야 지도부 모두 과반의 부정 평가를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불신을 씻으려면 내란의 상처를 정략적으로 소환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민생 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윤석열 재판'이 남긴 가장 현실적인 과제일 것이다. 과거에 매달리는 정치로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법원은 1심 재판에서 대통령과 총리, 국방장관 등 주요 인물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일단락지었다. 23일부턴 항소심 내란전담재판부가 가동돼 신속한 2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은 법원에 맡기고 정치는 '정치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