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전자 노사 갈등에서 촉발된 대기업 초과이윤 재분배 논란이 정치권과 산업계 전반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사진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기자실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차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최근 삼성전자 노사 갈등에서 촉발된 대기업 초과이윤 재분배 논란이 정치권과 산업계 전반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AI(인공지능) 시대에 기업에 집중될 초과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묻는 '한국형 사회연대임금' 논의를 제안하자 산업계와 야권은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마저 "반도체 이윤은 미래를 위한 생산적 재투자로 연결해야 한다"고 선을 그으면서 정부 부처 간 엇박자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기업의 이윤을 빼앗자는 낡은 주장'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문제의 뿌리에는 한국 노동시장의 오래된 이중구조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반도체 라인, 같은 공장 생태계에서 일하지만 일부 원청 정규직에게는 억단위의 성과급이 논의되는 동안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과 일자리를 걱정한다. 대기업의 초과이윤도 특정 기업 소속 임직원만의 노력으로 빚어진 결과라고만 보기 어렵다. 협력업체의 땀 어린 기술과 인력, 장기간 축적된 공급망의 역량이 함께 만들어낸 성과이기도 하다.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벌어진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는 한국 노동시장이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숙제다.


그러나 정부가 특정 대기업의 초과이윤 배분 비율을 직접 정하거나 강제하려 들 경우 부작용이 작지 않다. 배분 기준과 대상, 경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주가치 훼손, 경영 개입, 재투자 위축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자칫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고치자는 문제의식이 산업 경쟁력 훼손 논쟁으로 번질 수 있다.

필요한 것은 파이를 억지로 빼앗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대기업이 거둬들인 초과이윤이 하청 생태계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제도의 물꼬를 터주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 초과이윤을 바탕으로 현재 원자재 가격 변동에 초점이 맞춰진 납품대금 연동제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은 어떨까. 협력업체의 임금 인상분, 안전 투자 비용, 숙련 인력 확보 비용을 원청이 함께 부담할 경우 초과세수를 활용한 세제 혜택과 정책금융 우대, 공공조달 평가 가점 등을 제공하는 방식 등이 가능하다.

자본시장의 힘을 이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이 초과이윤을 활용해 협력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행위를 핵심 ESG 지표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평가에 반영한다면 상생에 앞장서는 기업이 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단순 기금 출연이 아니라 실제 하청 노동자의 임금 인상, 산업안전 투자, 복지 개선 등에 대한 데이터를 증빙한 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초과이윤은 승자가 독식할 전리품도, 억지로 뺏어 나눌 약탈품도 아니다.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재원으로 쓰일 때 대한민국 기업이라는 거위는 더 크고 건강한 황금알을 낳을 수 있다. 초과이익 배분을 논의하기 위한 '가칭 사회연대임금 모색 긴급토론회'는 연기됐지만 청와대도 성과 배분의 사회적 공론화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토론회 개최는 조만간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그 자리가 상생의 룰을 다시 설계하는 숙의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