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는 지난 5월 박종철 열사 관련 논란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의 정석을 보여줬다. 무신사 창업자인 조만호 대표와 조남성 대표 등 임직원 대표단이 지난달 22일 (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소재 '박종철센터'를 찾았다. /사진=무신사

"그래서 뭘 잘못했는데?"

연인이나 부부 싸움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이 대사는 이제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상 콘텐츠에서 단골 밈(Meme)이 됐다.


이 대사에는 위기관리의 본질이 숨어있다. 사과의 기본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하고 수치스럽더라도 이를 가감 없이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그저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영혼 없이 "잘못했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곧 더 큰 난관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저명한 사회학자 샘 리처드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교수는 사과의 5가지 핵심 요소로 유감 표명, 책임 인정, 보상과 배상, 진심 어린 반성, 용서 구하기를 꼽았다.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이 불거지자 온라인에서는 7년 전 무신사의 비슷한 실수가 함께 소환됐다. 2019년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케 하는 문구를 SNS 마케팅에 쓴 일이다.


이미 여러 번 사과하고 수습이 끝난 사건이기에 자칫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신사는 두말하지 않았다. 지난 5월20일 발표한 공식 사과문에는 리처드 교수가 말한 핵심 요소들이 분명하게 담겼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후 어떤 조처를 했는지, 반성의 목소리와 함께 재차 사과했다. 이튿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창업자인 조만호 의장과 조남성 대표이사가 박종철센터를 직접 찾아가 고개 숙이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조 의장이 사건 직후부터 7년간 박종철기념사업회 회원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조용히, 그리고 오래. 보여주기식 사과가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진정성 있는 행보에 여론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옛말은 이럴 때 쓰인다. 위기관리 능력만큼 돋보이는 것은 차근차근 다져가는 기업의 내실과 상생 행보다. 무신사가 서울 성동구와 손잡고 추진하는 서울숲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2023년부터 임차인을 찾지 못해 3년 이상 방치됐던 성수동 유휴 공간에 패션 셀렉트숍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연내 20여개 디자이너 브랜드가 집결하는 K패션·라이프스타일 특화 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민관 협력 기반의 지속 가능한 상권 모델을 구축하며 ESG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공시를 통해 드러난 데이터는 이들의 상생 기조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브랜드 인큐베이팅과 상생을 앞세우는 유통 대기업의 인디 브랜드 투자 금액은 최근 수년간 매출 대비 0.2~0.7%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같은 기간 무신사는 동반성장펀드 등 직접 지원 자금 편성을 통해 매출 대비 4~5% 수준의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매출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상생 투자 규모도 매년 확대하는 추세다.

과거 무신사가 유니콘을 넘어 기업가치 10조원 이상인 데카콘 기업을 노린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시장의 평가는 회의적이었다. 고성장 스타트업 특성상 기업가치 산정 시 최대 영업이익의 30~40배까지 평가하는 관행을 고려해도 과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무신사는 2023년 하반기 거래액 4조원을 기록할 당시 기업가치 3조5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2025년 연결 기준 무신사의 거래액은 5조원을 넘어섰고 매출 1조4679억원, 영업이익 1405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올해 이 기록을 다시 쓸 전망이다.

돈도 잘 벌고 리스크 관리도 잘하고 ESG까지 잘 챙긴다. 비상장 기업인데 웬만한 대기업보다 낫다. 재무제표에 찍히는 숫자도 매력적이지만 무신사는 시장과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데카콘 그 이상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