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이 106일 만에 종전을 앞둔 가운데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종료 여부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제도 중단 시 석유제품 가격 상승이 물가 전반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대로 유지하면 정유사 손실 보전에 따른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타결되며 양국은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공식 서명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과의 협상 완료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 없는 개방을 전적으로 승인한다"고 밝혔다.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교부 차관도 이란 국영방송에서 "최고국가안보위원회가 미국과의 종전 협정에 대한 공식 성명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며 종전 합의 사실을 알렸다.
협상 타결로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종료 시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3월 13일 급격한 유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시행된 석유 최고가격제는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조정 주기를 기존 2주에서 4주로 늘리고 4회 연속 동결한 6차 최고가격제 적용도 이번 주에 종료된다. 정부의 종료 결정이 없다면 오는 19일 0시부터 7차 최고가격제가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종료를 두고 세 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전쟁 종료와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국제유가가 적정 수준인 90달러 정도가 되면 제도 종료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바이유는 지난달 29일 미국·이란 종전 협상 진전으로 배럴당 88.38달러로 떨어진 후 약 2주간 90달러 선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양국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데 이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까지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제시한 요건을 모두 갖추게 됐다.
조건 충족에도 정부가 곧바로 제도 중단에 나서긴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최고가격제 시행 장기화로 억눌렸던 가격 인상 요인이 한꺼번에 반영될 경우 체감 물가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원유 수급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가격 변동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 상한이 풀리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뛰고 가공식품과 외식비 등 생활물가 전반으로 상승 압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최고가격제를 물가 상승 압력 완화 수단으로 지목한 만큼 당분간 제도는 유지될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경제 충격 대응 방안에 대한 질문에 "문제는 물가"라며 "최고가격제 시행이나 비축유 활용 등 국가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동원해 상승 폭이 최소화되도록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제도 장기화에 따른 재정 부담은 정부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제도 시행이 이어지며 정유사 손실액도 불어나고 있다. 정유업계는 제도 시행 이후 5월 말까지 누적 손실 규모가 4조원을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보전 기준과 산정 방식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7차 최고가격제까지 시행될 경우 정유사 추산 손실 규모는 정부가 마련한 4조2000억원 예비비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 상승도 부담이다. 종전으로 국제유가가 안정되고 원유 수급이 정상화되더라도 환율이 1500원대를 유지한다면 유가 하락에 따른 정유사 원가 부담 완화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다. 전쟁 리스크 해소로 환율이 안정화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글로벌 달러 흐름과 외국인 자금 수급 등에 영향을 받는 만큼 하락 폭이 크게 확대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진영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최고가격제 시행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이제는 시장 흐름에 맡겨야 한다"며 "유가가 정상화되는 시기에 제도를 통해 가격을 강제로 묶어둔다면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와 소비자물가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물가를 낮추려면 유류세 인하 폭 확대 등의 지원 수단을 검토하는 게 낫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