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에 800조원 규모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이하 '광주특별시') 부동산 거래현장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생산기지가 조성될 예정인 군공항 부지와 광주연구개발특구 첨단3지구에서 투자 문의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아직까지 거래량과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1일 오전 가본 광주특별시 광산구 신촌동 일대의 군공항 부지. 이전을 앞둔 군공항 철조망 너머로 민간 여객기와 군 전투기가 쉴 새 없이 활주로를 오갔다. 버스로 약 30분, 자동차로 5분 안팎 거리에 위치한 군공항은 차량만 드문드문 지날 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활주로와 맞닿은 부지에 키 큰 수풀과 잡목이 빽빽해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흔적이 느껴졌다.
826만㎡(250만평) 부지가 비워진 자리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시설(팹) 조성을 추진한다. 군공항에서 차로 20분가량 이동해야 하는 북구 첨단3지구는 연구개발(R&D)·인공지능(AI) 산업 거점으로 육성될 예정이다.
첨단3지구는 신축 아파트 공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힐스테이트 첨단센트럴(1520가구) 첨단제일풍경채그랑포레(1845가구) 첨단풍경채어바니티(584가구) 등이 올 하반기 입주를 앞두고 있어 현장마다 공사 노동자들의 발길이 분주했다.
반도체 팹과 연구시설의 직주근접 메리트가 있는 첨단3지구는 정부 발표 이후 분양권 거래와 투자 문의가 집중됐다. 이곳은 정부의 반도체 프로젝트 계획 이전부터 AI 거점으로 육성돼 왔다.
국가AI데이터센터가 가동되고 기업 유치가 진행 중이다. 인근에는 광주과학기술원(GIST)과 조선대 첨단산학캠퍼스 등도 위치해 있다. 광주특별시는 첨단3지구를 AI와 R&D 거점으로, 군공항을 이전시킨 후 해당 부지를 반도체 생산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마이너스 피 사라져…투자 움직임은 조용
부동산 대출 규제와 세제 개편 등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을 반영하듯 매수 움직임이 크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투자 문의가 이전보다 활발해졌지만 거래량이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라는 반응이었다.광산구 쌍암동의 공인중개사 A씨는 "최근에 분양한 '호반써밋 첨단3지구' 805가구는 반도체 산단의 영향으로 분양이 완료됐다"면서"이전의 상황이면 미분양이 많았을 텐데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해서 매물을 회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2019년 입주한 '힐스테이트 리버파크'(1111가구) 전용 84㎡는 지난달 13일 실거래가가 5억9300만원(17층)에 신고됐다. 동일 면적 아파트가 3주 만인 지난 4일에는 1억3000만원 이상 오른 7억3000만원(23층)에 거래됐다.
다만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거주 목적이 아니면 거래가 제한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A씨는 "매수 문의는 늘었지만 지켜보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가격이 갑자기 오르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도시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B씨도 "지난 한 달간 분양권 문의가 반짝 늘었다가 지금은 다시 잠잠해졌다"며 "반도체 호재로 분양권보다 가격이 하락한 마이너스 프리미엄 물량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래 종사자들은 대규모 투자 계획에 비해 온기가 지속되지 않은 것에 실망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공실 안내가 곳곳에 붙은 상가 밀집 구역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C씨는 "한 두 달 전에 외지 투자자들이 미분양 물량을 일부 산 것이 전부"라며 "지금은 매매와 전·월세 거래가 끊겼다"고 토로했다.
다른 개업 공인중개사 D씨도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D씨는 "정부 발표 당시에 마이너스 4000만원까지 기록했던 분양권 매물이 전부 팔렸는데 최근에는 다시 분양권을 내놓는 사람들이 생겼다"며 "반도체 산단 조성이 빨라도 5~10년은 걸릴 거라는 예상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업단지 조성만으로는 주거 수요를 유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기 혁신도시의 실패 사례에서 보듯 일자리와 주거, 교육, 문화시설이 동시에 구축돼야 정주 여건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D씨는 "기업 유치 효과를 높이려면 협력업체와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교통 기반시설을 함께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인구 감소와 도심 공동화에 빠진 호남이 반도체 투자를 계기로 변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 치평동 광주특별시청 앞에서 만난 60대 고모씨는 "반도체 투자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집값이 급등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호남에 고소득 일자리가 많아지고 청년들이 돌아오는 계기가 된다면 분명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