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은 범죄의 확정도, 형벌의 집행도 아니다. 그러나 구속만으로도 피의자의 삶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만큼 구속에 신중해야 하지만, 여전히 수사기관의 편의주의적 행태에 좌우되고 있다는 지적이 끝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아무런 관련 없음./사진=클립아트코리아

대기업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던 송모씨는 2024년 59세 나이에 갑자기 구속됐다. 20년 전인 2004년 벌어진 이른바 '영월 농민회 간사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면서다. 당시 영농조합 간사였던 40대 피해자는 강원 영월군 영월읍 농민 사무실에서 여러 차례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당시 송씨도 용의자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사귀던 여성이 피해자와 깊은 관계였고, 송씨가 이를 알게 된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씨는 범행 시각 다른 알리바이를 제시했고, 이를 입증하면서 수사선상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모든 게 끝난 듯했다.

하지만 202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범행 현장의 족적과 송씨의 샌들 바닥 문양이 99.9% 일치한다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송씨를 살인 피의자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자 검찰은 추가 족적 감정과 혈흔 및 DNA 분석,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통신내역 조사 등을 진행한다며 무려 3년 6개월간 추가 수사를 벌였다. 이어 사건 발생 20년이 지난 2024년 6월 송씨를 구속한 뒤 재판에 넘겼다.


송씨는 '짜맞추기 수사'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1심에선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그러나 2심에서 다시 무죄로 뒤집혔다. 총 5번의 족적 감정 결과 2번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2심 재판부는 "설령 족적이 동일하더라도 송씨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될 뿐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송씨는 381일간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그 사이 송씨의 삶은 모든 게 달라졌다.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던 송씨는 구속되면서 정년을 코앞에 두고 직장을 그만뒀다. 직장을 그만두기 전 구속과 함께 월급이 크게 깎였고, 퇴직금도 크게 줄었다. 송씨를 변호한 양호민 변호사(법무법인 중현)는 지난 26일 '동행미디어 시대'에 "처음 변호를 맡을 때 송씨는 이미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며 "검찰청 접견실에서 만난 송씨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억울하니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이어 "송씨는 지금까지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어 심리 치료와 정신건강의학과 통원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건강과 해외여행 경험'이 도주 우려의 근거?

일단 구속되고 나면 나중에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무너진 삶의 기반을 회복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헌법 27조 4항에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못 박은 것은 무고한 시민의 삶이 국가권력에 의해 너무나 쉽게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형사소송법에서는 '불구속 재판'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즉, 피의자 구속은 '형사재판에 출석할 것을 보장하고, 증거인멸을 방지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확정된 형벌을 집행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거꾸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면 불구속 재판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여전히 수사기관은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를 '만능키'처럼 사용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마련됐던 6·3 지방선거 개표소를 지킨다며 체육단체 직원들의 사무실 진입을 끝까지 막아 일각에서 '올다르크'(올림픽공원+잔다르크)로 불린 30대 여성 A씨의 구속영장 사유를 보면, 수사기관이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를 얼마나 편의주의적으로 남발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A씨의 구속영장에 '현재 30세에 불과해 도주의 지장이 있는 질병이 없고, 해외여행 경험이 있어 언제든 해외 등 무연고지로 도피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전형적인 '꿰맞추기식' 영장이란 비판이 나온다. 건강하고, 해외여행 경험이 있다는 점을 구속 사유 중 하나인 '도주 우려'와 무리하게 연결했다는 것이다.

A씨 변호를 맡은 박주현 변호사(법률사무소 황금률)는 "이런 논리라면 해외 경험이 많은 요즘 2030세대는 모두 구속 사유를 가진 셈"이라며 "과도한 영장 신청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무죄 확정 시 보상보다 수사기관 책임 묻는 절차 필요"

구속 자체를 범죄의 확정이나 형벌의 집행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선 구속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유우성씨는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가 선고됐지만, 여전히 '간첩'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2004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유씨는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2013년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며 간첩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하지만 검찰이 제시한 핵심 증거인 여동생의 진술이 국가정보원의 회유와 협박 때문에 나온 허위 진술이었던 데다 유씨의 북한 출입기록 역시 위조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유씨는 2013년 1월 국정원에 체포된 이후 같은 해 8월 1심에서 무죄를 받을 때까지 7개월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유우성씨가 지난 24일 서울 구로구 한 식당에서 '동행미디어 시대' 기자를 맞았다. 유씨는 이 식당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유씨는 "무리한 기소로 무죄를 받은 경우 정부의 보상보다 수사기관에 책임을 묻는 절차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유찬우 기자

유씨는 지난 24일 '시대'와 만나 "사건을 제대로 소명할 기회도 없이 당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며 "서울시 공무원이어서 도주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이 결정돼 두렵고 당황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구속될 때 보도와 비교해 무죄 판결은 크게 알려지지 않아 무죄 판결 이후 10년이 넘도록 '증거는 조작됐지만, 간첩은 맞다'는 오해 속에 살고 있다"며 "나의 잃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유씨는 "지금까지 조작 수사에 대해 책임자 처벌은 물론, 사과도 받지 못했다"며 "무리한 기소로 무죄를 받은 경우 정부의 보상보다 수사기관에 책임을 묻는 절차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