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발달장애인 대상 공권력 남용 규탄 및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에 앞서 경찰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1개를 나눠먹은 중증 발달장애인 2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검찰에 송치해 비판을 받았다. /사진=뉴스1

대구 동구에 홀로 거주하는 무연고 발달장애인 김성수씨(가명·45)는 2024년 5월17일 법원으로부터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통보받았다. 두 달 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놓인 잔돈보관함에서 2000원을 꺼내 쓰고 같은 해 1월15일 같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누군가 두고 간 체크카드를 가지고 4차례에 걸쳐 모두 4500원을 무단으로 사용한 혐의다.

수사기관은 김씨에게 절도 등 3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통지문에는 '약식명령을 받으시고 불복하시는 분은 수령 후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의 지능은 8세 수준.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통지문 내용을 전혀 이해 못했다. 수사기관에서 날아든 우편물은 뜯기지 않은 채 집안에 쌓여갔다.


장애인지원기관 직원이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온 통지서들을 뒤늦게 발견했다. 직원 A씨는 "발달장애인이고 글을 읽지 못한다는 기록이 없어 문서로만 판결문이 송달됐고, 결국 이의신청 기간도 지나 버렸다"고 말했다. 만약 약식명령에 이의신청을 했다면 벌금을 감경받았을 수 있다. 또 경찰이 운영하는 '경미범죄심사위원회'에 회부됐다면 지적 장애라는 정상 참작 사유로 선처를 받았을 수도 있었다.

지난 6월 부산에서 중증 발달장애인 2명이 편의점에서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 1개를 나눠먹었다는 이유로 특수절도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발달장애인의 방어권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적 장애인이 수사 과정에서 법률적 지원이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제도는 형사소송법, 발달장애인법 등 국내 법률과 국제협약에 두루 보장돼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조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조사받고 처벌받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달장애인인가요?' 첫 질문부터 시작되는 방어권 공백

국가인권위원회는 직권 조사를 통해 지난해 3월부터 2개월 동안 전국 교정시설 20곳을 방문해 발달장애인 수용자 127명을 개별 면담했다. 직권조사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거나 여러 차례 권고에도 같은 유형의 사건이 반복될 때 시행하는 조사다. 2022년부터 발달장애인 피의자나 피해자에게 형사상 적절한 조력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진정이 잇따르자 인권위가 직권조사에 나선 것.

직권조사 결과 경찰이 발달장애인을 상대로 피의자 조사를 할 때 처음 묻는 말부터 이들을 불리한 상황으로 내모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통상 "당신은 발달장애인인가요?"라고 확인한 뒤 범죄사실을 묻는데, 대다수 발달장애인은 이 질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아닙니다"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이 소지한 장애인복지카드에는 통상 지적장애인 또는 자폐성 장애인이라고 적혀있다. 직권조사에서 면담자 127명 중 발달장애인 개념을 이해한 경우는 39명에 불과했다.


또 대다수 발달장애인은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설명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데,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하는 경우도 많다. 직권조사에 참여한 인권위 조사관은 "의도에 맞춰 대답하려고 하고,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이해한 것처럼 대답해 장애가 심하지 않음을 인정받으려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직권조사 시 면담자 127명 중 수사 과정에서 부모 등 신뢰관계인의 도움을 받은 사례는 27명(21%)뿐이었다. 나머지 발달장애인 수용자들은 의사소통이 힘든 상황에서 홀로 조사를 받았고, 대부분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고 한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전담 경찰관 대폭 늘렸지만, 헛바퀴 도는 지원

"그들은 범죄 현장에서 가장 늦게 도망치고, 가장 먼저 체포되며, 가장 빨리 자백한다."

김지영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발달장애 피의자의 특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발달장애인들은 상황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도망친다는 생각을 못 할 뿐 아니라 순응하는 성향 때문에 유도신문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발달장애인 지원제도는 신뢰관계인 제도, 진술조력인 제도, 전담조사관 제도 등이 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 5는 '경찰이 장애인 피의자를 심문하는 경우 피의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자를 동석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현장의 수사 절차에서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방어하기엔 역부족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장애인 단체 등의 주장이다. 신뢰관계인이 경찰에 도착했을 땐 1차 조사가 끝난 경우가 많은 데다 설령 신뢰관계인이 조사에 참여하더라도 법률 전문가나 소통 전문가가 아닌 만큼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피의자의 경우 '통역'을 지원하듯 장애인과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전문가의 지원을 받는 게 '진술조력인 제도'다. 하지만 현재 진술조력인 제도는 장애인 피해자에 한해 의무화돼 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피의자도 진술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찰청은 2022년 11월 '발달장애인 전담 사법경찰관을 확대하고 교육을 강화하라'는 인권위 권고에 따라 전담경찰관을 대거 지정했다. 2022년 2256명이던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은 이듬해 4666명으로 2배 늘었다. 2024년에는 1만명이 넘어 인권위 권고 이후 2년 만에 전담 경찰관을 4배 이상 늘렸다. 지난해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은 1만731명으로 전체 경찰 인력(13만1297명)의 8.2%에 달한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경찰은 전담 경찰관을 대상으로 '장애인 전담 조사과정' 매뉴얼 등을 익히도록 하고, 사이버 교육 등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6개월 내지 1년마다 인사이동이 있는 데다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이라지만 모두 일반 사건을 함께 처리하는 구조에서 이들에게 전문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달장애인, 청소년 사건 다루듯 관점 달리해야"

발달장애인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제도 개선방안 역시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되거나 형식적으로 마련돼 발달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발달장애인 지원제도가 겉도는 이유다. 특히 신뢰관계인 동석과 같은 간접적 조력 제도는 있지만 발달장애인이 피의자로 조사를 받을 때 직접적으로 법적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는 없다.

지난 6월 부산에서 중증 발달장애인 2명이 편의점에서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 1개를 나눠먹었다는 이유로 특수절도 혐의로 검찰에 송치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건은 발달장애인 지원제도가 얼마나 유명무실한지 잘 보여준다. 당시 2명 가운데 1명에게만 전담 경찰관이 배정됐다. 이들은 5세 미만의 지능임에도 조서에는 주소가 명확히 기재돼 있고,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대목도 있다. 가족들은 경찰 조서에 실제 진술하지 않은 내용이 대거 포함됐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 맞춤형 법률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제도의 실효성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초 수사 단계부터 국선 변호인과 진술조력인을 제공하고, 이 과정에서 발달장애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사건을 다수 맡아온 손영현 전 국선전담변호사는 여러 지원 제도가 있음에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망설임 없이 "무관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규정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만드는데 규정이 작동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것"이라며 "발달장애인 사건 처리 지침을 수사 현장에서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손 변호사는 또 "청소년 보호 사건을 다루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도 처벌 수위를 다른 관점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연령을 고려해 청소년과 같은 관점에서 어떤 지원 제도가 필요할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