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증권업계가 '상품설계 체크리스트' 마련·작성 등을 의무화하는 금융투자자 보호 강화에 속도를 낸다. 홍콩 항셍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등 파생결합상품의 대규모 손실 사태 재발을 막고 최근 급등락을 반복하는 확대된 국내 주식시장 변동성 상황에서 금융투자자 보호 체계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서재완 금융감독원 금융투자 부원장보는 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금융소비자보호 개선 로드맵 추진 과제, 실효성 있는 투자자 보호 체계 마련을 위한 파생결합상품 제도개선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서 부원장보와 박시문 금감원 자본시장감독국장, 천성대 금투협 증권선물본부장, 정형규 자율규제 본부장이 참석했다. 업계에서는 10개 증권사(한국투자·NH투자·미래에셋·삼성·신한투자·KB·하나·신영·교보·메리츠증권)의 파생결합상품 및 소비자보호 담당 임원이 함께 했다.
투자상품 접근부터 청산까지 보호체계 확립
앞서 금감원과 금투협, 주요 10개 증권사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관련 제도개선 TF(태스크포스)를 운영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안 마련에 착수했다. 이날 간담회에선 금융투자자 보호를 위한 기초 과제와 파생결합상품의 제조부터 판매 뒤 관리 단계까지 증권업계의 자율책임을 강화하는 제도개선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파생결합상품 제조부서가 자체로 상품의 잠재적 위험 요인을 점검할 수 있도록 사전 상품설계·심사 프로세스가 구축된다. 이를 통해 ▲상품설계 체크리스트 마련 및 작성 의무화 ▲기초자산 관리 체계화 ▲상품승인위원회 운영기준 정비 ▲상품승인위원회 심의 기능 강화가 도입된다.
중도상환 안내를 강화하고 기계적 재투자 방지를 위한 유의사항도 안내된다. 고난도 상품 자율점검(연 1회→분기 1회)·이사회 보고 주기(연 1회→반기 1회)도 단축된다. 고난도 ELS 낙인 근접 알림을 통해 수익 상환을 기다릴지, 중도상환을 선택할지 여부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고난도 상품 부적합 판매비율 관리를 통해 증권사가 부적합 판매의 관리비율을 설정(판매채널·고령자 여부 등으로 차등 가능)해 부적합 판매 비율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다.
상품승인위원회에는 소비자보호·준법감시·판매 부서를 필수 참여시키고 CCO(금융소비자보호책임자)에게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상품 출시를 보류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한다.
서 부원장보는 "최근 홍콩 항셍지수 ELS 투자자 손실 사례와 시장 변동성 증가 등의 영향으로 투자자를 사전 보호하기 위한 종합적 제도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상품 생애주기에 따라 파생결합상품의 제조·심사 단계에서 사전 자율점검 체계를 확립하고 판매 및 사후 관리 단계에서도 투자자에게 적시성 있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투자자의 합리적 판단을 지원하는 한편 증권사 자율점검 주기 등 내부통제를 강화해 투자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제도개선으로 파생결합상품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투자자에 대한 두터운 보호 체계를 확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금감원은 앞으로도 투자자를 선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지속해서 추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급격한 증시 변동에 투자자 혼란 가중
최근 국내 증시는 지속된 급등락에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투자자 불안이 커졌다. '코리아 프리미엄'을 위한 자본시장 체질개선 방안 역시 설득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는 "한국은 투자 부적합 국가"라고 지적하는 칼럼을 썼다.국내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자 매매거래에도 여러 차례 제동이 걸렸다. 1996년 11월25일 코스피시장에 매수 사이드카(프로그램매매 매수호가 효력정지)가 도입된 이후 역대 105번 발동됐는데 올 들어서만 이날까지 매수 22회, 매도 23회 등 총 45번 걸렸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유위기 당시 26회(매수 14회, 매도 12회)를 뛰어넘은 수치다.
코스닥시장의 경우 2001년 3월5일 제도 도입 이후 총 114번 발동 가운데 올 들어 전날까지 30회(매수 17회, 매도 13회)가 걸렸다. 올해 코스닥 사이드카 발동 역시 19회(매수 6회 매도 13회)가 걸렸던 2008년 기록을 경신했다. 20분 동안 증시 매매거래를 멈추는 '서킷 브레이커'도 올해 코스피에 9번(역대 15회), 코스닥에는 4번(역대 14회) 걸려 극심한 변동상 장세를 대변했다.
이 같은 국내 증시 변동성 확대에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찬진 금감원장은 최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고개 숙인 바 있다. 이 위원장은 "최근 시장의 변동성이 증대되면서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흔들리고 있는 점에 대해 당국자로서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사과했다. 이 원장도 "책임에 대해서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시장과 관련된 변동성 최소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 둘과 함께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등 정부 경제·금융당국 수장 4명을 일컫는 이른바 'F4'는 긴급시장점검회의를 7월16일과 같은달 29일 두 차례 열어 사안의 심각성을 더했다. 이들은 이전 회의 회의를 통해 최근 국내 증시 불안 요인으로 지목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의 개인별 투자한도를 총 투자금의 20%로 제한하는 등의 규제 강화 내용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