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의 경영자들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보고받고, 검토, 협의하고 판단한 후에 결정한다. 사업의 성패가 거기에 달려있다. 요즘은 경영자들이 단독으로 큰 결정은 하지 못하고 사외이사들이 다수인 이사회의 최종 승인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경영자가 결정하고 이사회 승인을 받아 진행한 사업이 실패로 끝나면 어떻게 되는가.
회사가 추진한 모든 사업이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수많은 프로젝트가 추진 중에 다양한 이유로 중단되고 폐기된다. 그런데 그중 규모가 큰 프로젝트나 세간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특이하게 잘못된 프로젝트는 이른바 '실패한' 사업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고 주주들에게도 알려진다. 주주들은 사업의 중단이나 실패가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중대한 실책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 경우 법률적 책임까지 묻고 싶어 한다.
전에는 이 문제가 그다지 큰 걱정은 아니었다. 주주가 나서려면 자신도 시간과 노력, 비용을 투자해야 해서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덜한 기관투자자들과 외국계 헤지펀드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경영자들의 피부에 와닿는 문제가 되었다. 법률적 책임이란 회사가 입은 손해를 개인적으로 회사에 보상하라는 것이다. 임원 책임보험은 그에 대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단되거나 폐기된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경영진이 내부적인 책임 외에 법률적으로도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상당한 위험이 수반될 것 같은 사업은 추진을 하기 어렵다. 일상에서는 '리스크'의 반대말이 '안전'이지만 기업 경영에서는 리스크의 반대말은 '기회'다. 정주영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였다는 "이봐, 해봤어?!"라는 말이 생각난다. 후환이 염려되어서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업만 추진되게 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없어진다.
크게 잘못된 판단에 따라서 사업이 추진되다가 폐기되거나, 관리에 실패해서 중도 하차하는 경우 담당 임원은 거취를 결정하거나 인사상의 조치가 따른다. 그런데 그런 책임을 다 지는 데 더해서 법률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회사에 수십억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면 담당 임원들과 이사들이 개인적으로 그 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실제로 더 중대한 문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일단 누군가가 법률적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사법적 절차를 시작하는 경우 훗날 법원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해당 임원은 큰 고난을 겪게 된다. 그리고 사업의 결과가 자신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입증하지 못하면 소송에서 진다.
미국법에서 유래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은 회사의 이사가 충분한 정보에 의거해서 신중히 검토하고 판단한 후에 개인적인 이익을 결부시킴이 없이 특정한 사업을 추진했다면,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해도 '법률적인 책임'은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정직하고 신중한 판단'은 결과가 나쁘다 해도 해당 결정을 내린 이사에게 법률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법률적' 책임이다. 그 외의 모든 책임은 다 진다.
이러한 경영판단의 원칙은 독일에서도 이미 약 20년 전에 수입된 제도다. 그 한 해 전에 '경영판단의 원칙'이라는 561쪽 짜리 교수 자격 논문이 나왔었다. 학계에서 새로운 이론을 입법으로 연결시키자는 취지에서 교수 자격 논문이 나왔다는 것은 그 전에 이미 무수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학술 논문이 발표되었다는 의미다.
독일 주식회사법이 경영판단의 원칙을 다소 간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독일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은 "주식회사의 이사가 적절한 정보에 의거 회사의 최선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합리적으로 믿고 경영판단을 내린 경우, 충실의무나 주의의무 위반을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독일 규준의 이 규정은 독일어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에 'Business Judgment Rule'이라고 영문 용어를 붙여 놓았다.
최근 상법개정을 통해 주식회사 이사들의 충실의무가 주주들에게도 확대되는 등 경영하는 사람들의 법률적 책임이 무거워진 데 상응해서 이 경영판단의 법칙을 상법에 명문으로 도입하자는 의견이 많고, 국회가 그 도입을 위한 입법 작업을 진행해 왔다. 학계에서도 적지 않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고 판례도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입법을 통해 도입이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경영판단의 원칙이 도입되면 재판 외에서 더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기업의 경영자들이 적극적으로 사업기회를 포착하고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효과를 일으켜 법률이 기업활동에 활력을 주는 한 사례가 될 것이다.

![[뉴스언팩] 중국산 테슬라는 자율주행 불가? / '스킨케어'에서 '헤어케어'로 움직이는 K-뷰티 시장](https://i.ytimg.com/vi/AO5PnBkJkrY/maxresdefault.jpg?width=1920&quality=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