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의 여파로 서울 강남권과 용산, 여의도 등에 고가 1주택을 보유한 60·70 은퇴 세대의 시름이 깊어졌다. 자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에 강화된 보유세가 부과되고 거주 중심으로 양도세 혜택이 전환됨에 따라 세 부담이 큰 고가 아파트를 지속 보유해도 될지 부동산 현장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가 내년부터 1000만원가량 오른다고 예상한다. 월 84만원 수준인데 부담이 크지만, 팔았을 때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가 수억원이어서 비교가 안 된다. 장기보유특별공제(장기거주특별공제로 변경 예정) 기한도 다 못 채운 상황이라, 현재로선 보유를 결정했지만 앞으로 고민은 계속 할 것 같다."-서울 강남 아파트 1주택을 보유한 은퇴자 A씨

정부가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의 여파로 서울 강남권과 용산, 여의도 등에 고가 1주택을 보유한 60·70 은퇴 세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연금 소득에 기반해 생활하는 은퇴자에게 보유세가 적잖은 부담인 건 사실이지만, 그동안 집값 상승에 따른 양도세 금액에 비해 장기 거주 등의 혜택은 미미해 고가 아파트를 지속 보유해도 될지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재정경제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1세대 1주택자의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현행 60%에서 내년 70%로 인상하고 고가주택 종부세율을 단계별로 올리는 것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공시가격의 일부를 과세 대상으로 정하는 계산 방법이다. 거주 1주택자의 종부세 기본공제는 12억원에서 14억원으로 확대되고 비거주 1주택자는 9억원으로 축소된다.

업계에 따르면 보유세 부담이 급격히 오르는 대상은 실거래가 32억원 초과 주택이 될 전망이다. 프롭테크서비스 부동산계산기를 이용해 공정시장가액비율 70%와 종부세율 인상안을 적용 시 반포자이 전용 84㎡에 거주하는 60세 1주택자(7년 보유·거주)의 보유세는 올해 1352만원에서 내년 2144만원으로 약 792만원(58.5%)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공시가격 평균 상승률(20.0%)을 반영했다. 반포자이 84㎡의 올해 공시가격은 32억원이며 최근 실거래가는 47억원이다.

실제 강남 일대 공인중개사사무소에는 매도와 갈아타기 문의가 쇄도했다. 일부 단지에서 호가를 시세보다 수억원 낮춘 매물들도 등장했다. 10일 네이버부동산에 등록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84㎡(3410가구)의 매도 호가는 43억원으로 최근 실거래가 대비 4억원이 낮았다. 압구정 재건축 단지들은 호가 1억~4억원이 하락했고 현대·미성아파트는 호가가 3억~4억원 내렸다. 재건축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이 임박한 아파트의 경우,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가 까다로워지며 매도를 서두르는 사례가 확인됐다.


무엇보다 고가·비거주 1주택자의 경우 세금 페널티가 강화되어 직접 거주를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커질 수 있다. 강남 등에 1주택을 보유하면서 경기·인천이나 비수도권에 임대차로 거주하던 은퇴 세대가 직접 거주를 결정할 경우 젊은 세대가 도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나는 임대차 불안 현상도 예상된다.
2026년 세제개편안 부동산부문 /그래픽=뉴스1

비수도권 이주 시 양도세 인센티브 세부 논의 필요

정부가 올해 5월9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조치를 종료함에 따라 일부 매도 효과가 있었고, 대상을 고가·비거주 1주택자로 확대할 경우 집값 안정 효과를 일부 기대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제언도 있다. 다만 전세불안 등 부작용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채상욱 크리에이터(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를 종료하기 직전 강남 등에서 매도 효과가 있었고 정부는 초고가 주택을 대상으로 정책을 확대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그는 "실거래가 40억원 이상 주택은 보유와 거주 둘 다 2028년부터 실익이 줄어 매도가 늘어날 것"이라면서 "보유세의 경우 큰 상관이 없어 보인다. 수백에서 수천만원이고 양도세 수억원과는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에 따르면 올해 5월9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조치가 종료되기 전인 1월부터 4월까지 강남구 아파트의 매매 평균금액은 26억4505만원으로 전년 동기(31억4375만원) 대비 16% 하락했다. 반대로 전세는 8억5735만원에서 9억5424만원으로 12% 상승했다. 다만 이는 지난해 토지거래허가제 해제에 따라 거래가 일시 폭증한 상황으로 강남 아파트의 매매 거래량은 같은 기간 1746건에서 932건으로 감소했다.

전세 등 임대차 가격 불안 우려에 대해 채 대표는 "상위 20% 매매가는 하락하고 상위 40% 매매와 전월세는 둘 다 상승하는 올해 2~3월과 유사한 가격 흐름을 전망한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얼어붙은 매수 심리 탓에 실제 거래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울 고가 아파트를 팔고 가격이 낮은 수도권 외곽이나 소형 아파트로 갈아타기를 유도하려면 양도세 혜택이 더욱 강화돼야 하는데,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올해 5월 양도세 중과 시행 전 주택을 매도한 이들과 동일한 혜택을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에서 양도일 기준 65세 이상 1주택자가 5년 이상 거주한 수도권 주택을 처분하고 6개월 내 비수도권으로 이주 시 세 감면율을 2027년 50%(5억원 한도), 2028년 30%(3억원 한도)로 일시 확대했다. 65세 1주택자가 10억원에 취득한 주택에 10년 보유·5년 거주하고 30억원에 양도한 경우 비수도권으로 이주 시 양도세는 현행 1억6500만원에서 내년 8300만원으로 줄어든다. 다만 지방 이주는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재훈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주요 선진국의 노년 주거 정책은 어르신이 살던 지역, 즉 익숙한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갖춰진 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AIP(Aging in Place) 방식을 지향한다"면서 "고가주택을 보유한 은퇴세대도 수십년간 쌓아온 지역 내 유대감과 의료·문화 인센티브, 자녀와 사회 관계망을 포기하고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은 어렵다. 수도권 내 분당, 양평 등으로의 분산도 쉽지 않은 상황에 지방 이전 인센티브는 인구 분산이나 주거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전망"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