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한국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핵심 원인으로 'stop-and-go'(조였다 풀었다)로 압축되는 '정책 변동성'을 꼽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정권이 바뀔 때는 물론 같은 정권에서도 규제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다보니 시장이 아예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개혁신당 정책연구기관 개혁연구원은 지난 11일 이런 내용을 담은 58페이지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재명 정부까지 23년간 발간된 한국경제보고서(OECD Economic Surveys: Korea) 14권 등의 문서를 전수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세제 개편안이 나오기 전 지난 7월 발간된 최신 보고서도 분석 대상에 포함됐다.
OECD가 2004년 이후 한국에 반복해서 권고한 원칙은 ▲정책을 정권마다 뒤집지 말 것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즉각 뒤따라 나오는 시장 구조를 만들 것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등 대출 규제는 은행 건전성 도구로만 쓰고 특정 지역 집값 조준 수단으로 삼지 말 것 ▲집을 사고팔 때 내는 거래세는 낮추고 매년 내는 보유세는 올릴 것 등 네 가지다.
한국, 부동산 세금 OECD 평균 2배
OECD는 올해 보고서에서 한국의 부동산 관련 세금이 GDP(국내총생산)의 3.0%로 OECD 평균(1.6%)의 두 배 가까이 된다고 평가했다. 총세수 대비 11.7%로 OECD 평균(5.1%)의 두 배가 넘을 정도로 부동산에 대한 세금 부과가 과하다는 지적이다. 세금은 매년 내는 보유세보다 집을 사고팔 때 내는 거래세에 편중돼 세제 구성 자체가 왜곡됐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세수 가운데 보유세 비중은 29.4%로 OECD 평균(56%)의 절반 수준이지만 거래세 비중은 50.4%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23일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보유세를 통상적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려면 3배는 올려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OECD의 권고는 세 부담 총량을 더 키우자는 것이 아니다. 세금 총액을 유지한 채 무거운 거래세를 낮추고 그만큼 보유세로 옮겨 세제 구성을 뒤바꾸자는 데 방점이 있다.
OECD는 오래전부터 소수 계층에 부담을 집중시켜 단기 집값 통제 수단으로 쓰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설계에 명시적으로 반대해 왔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에 대해선 "주택가격은 거시 여건과 규제 등 많은 요인으로 결정되므로 세제로 단기 집값에 영향을 주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다.
OECD는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 2019년 3분기 12.8에서 2022년 1분기 17.8로 높아진 점을 짚었다. 가구 연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약 17.8년을 모아야 서울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OECD는 종부세를 급격히 올려 납세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늘어난 세금이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양도소득세까지 함께 올려 집을 팔 이유가 사라지자 오히려 매물이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IMF(국제통화기금) 분석도 인용했다.
올해도 다주택자에게 취득세·보유세·양도세 모두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방식은 민간 임대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은 이런 우려에도 종부세 공제 이원화(거주 14억원·비거주 9억원)와 공정시장 가액비율 상향(60→70%) 등 종부세 강화 축만 담겼다.
부동산 시장, 'stop and go' 정책 안 믿는다
대출 규제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올해 OECD 보고서는 강남·서초·용산 등 인기 지역의 보통 면적 아파트 평균가가 25억원을 넘어 대출 상한 2억원을 적용하면 실효 LTV가 8% 이하로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규제지역 LTV 상한(40%)의 5분의 1 수준으로, 25억원 아파트라면 원래 최대 10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총량 규제로 2억원까지만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거래가 신용 조건에 덜 민감한 현금 매수자 위주로 재편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중위소득 가구가 살 수 있는 주택 비율도 2012년 32%에서 2025년 7%로 급감했다.
OECD가 지적한 세제·대출 문제의 뿌리에는 '자주 바뀌는 정책'이 있다. OECD는 2005년 문서에서 한국 부동산 정책을 'stop-and-go'로 처음 명명했다. 2007년에는 "잦은 정책 변경이 곧 주택가격 변동성의 원천"이라고 못박았고 2022년에도 "시장이 다음 정부가 어차피 되돌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순간 새 정책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17년의 간격을 두고 최소 네 차례 같은 경고가 반복된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전을 되풀이했다. 규제지역 지정은 ▲노무현 정부의 확대 ▲이명박 정부의 전면 해제 ▲박근혜 정부의 재창설 ▲문재인 정부의 대확대 ▲윤석열 정부의 대부분 해제 ▲이재명 정부의 서울 전역 재지정으로 다섯 번째 반전을 맞았다. 보유세도 ▲노무현 정부의 신설·강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완화 ▲문재인 정부의 최고세율 6.0% ▲윤석열 정부의 부담 완화 ▲이재명 정부의 재강화로 이어졌다.
이재명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OECD가 20여년간 요구해온 4대 원칙 중 세 갈래에서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평가가 나온다. 취임 이후 1년여 동안 여섯 차례 부동산 종합 대책을 내놓으며 정책 변동성 경고를 흘려보냈고, 대출 총량 규제는 특정 지역 집값을 겨냥한 도구로 회귀했다는 지적이다. 세수중립 전환 없이 보유세만 강화한 세제개편안 역시 원칙에서 벗어난다는 평가다.
해당 보고서를 집필한 김영임 개혁연구원 원장직무대행(부원장)은 "OECD가 2004년 이후 반복해서 요구한 것은 특정 규제의 강화나 완화가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 탄력적 공급, 금융건전성, 거래보다 보유에 중심을 둔 안정적 세제였다"고 분석했다. 이어 "종부세와 같이 상위 1~2% 소수만 겨냥해 단기 집값을 잡으려는 징벌적 설계는 OECD가 차선책으로 지목한 방식"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국회 심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20여년간 이어진 OECD 권고 원칙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