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진은 지난 11일 오전 9시쯤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3-1 출구 에스컬레이터 앞에 길게 줄을 선 학생들 모습. 아침부터 공무원 학원으로 향하는 이들이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 날 점심 시간 때 컵밥 거리 풍경. 점포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한국 경제 구조처럼 노량진도 극과 극이다. /사진=박형훈 기자


45개월째 연속 줄고 있다. 청년 취업자 수 얘기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12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을 보면, 15~29세 청년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만1000명 줄었다. 지난해 기준 '쉬었음 청년'은 71만7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속에서도 청년 채용 시장은 좀처럼 회복 기미가 안 보인다.

이럴 때 호황을 누리는 곳이 있다. '공시생 메카'인 서울 노량진 고시촌이다. 한동안 청년들 발길이 뜸했던 이곳으로 다시 공시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AI 확산과 기업의 경력직 채용 비중이 늘면서 청년들의 취업 문턱이 높아지자 공무원 시험 인기가 다시 치솟고 있는 것. 그렇다고 그 온기가 노량진 전체로 퍼지는 건 아니다. 산업별·세대별·지역별 채용시장의 양극화처럼 노량진 고시촌도 양극화되고 있다.

공시생 5년 만에 반등, 노량진 고시촌 '부활'

지난 11일 오전 9시쯤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3-1번 출구 에스컬레이터에는 책가방을 멘 수험생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공무원 학원으로 향하는 인파였다. 이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공무원 시험 교재가 들려 있었다. 노량진 고시촌의 '부활'을 알리는 장면이다.



유명 공무원 프랜차이즈 학원인 '공단기' 본점 임성환 원장은 [시대]에 "현장 수강생이 지난해보다 평균 20% 늘었고, 최근에는 그 증가 폭이 30%대 후반까지 올라왔다"고 전했다. 특히 수업 이후에도 담임교사가 집중적으로 관리해주는 '관리형 수업반'은 현장 강의 좌석 380석이 모두 찼고, 대기자만 80명이 넘는다고 한다.

국가데이터처의 '2026년 5월 경제활동인구 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올해 5월 비경제 활동 인구 가운데 일반직 공무원 시험 준비 비율은 22.1%로, 지난해보다 3.9%포인트 상승했다. 2021년 이후 4년 연속 감소하며 2025년 18.2%까지 떨어진 청년층 일반직 공무원 시험 준비 비중이 5년 만에 반등한 것이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 채용 선발시험 경쟁률도 다시 오르고 있다. 올해 선발 예정 인원은 3802명인데, 무려 10만8718명이 지원했다. 평균 경쟁률은 28.6대 1. 지난해 경쟁률(24.3 대 1)을 넘어섰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전민기씨(서울 구로구)는 "졸업한 주변 동기 대부분이 아직 취업하지 못했다"며 "기업 공채 자체가 줄어든 데다 AI 때문에 앞으로 취업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아 친구 두 명과 함께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시생들 사이에선 올해부터 다시 공시족이 늘면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가 아니라 올해 시작하지 않으면 진짜 늦는다'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공시생이 늘면서 노량진 고시촌엔 다시 활기가 돈다. 다만 그 활기는 극히 제한적이다. 지하철 1·9호선 노량진역과 바로 연결된 메가스터디타워 등 역세권으로 대형학원들이 몰리면서 수험생들의 동선도 자연스럽게 역 주변으로 좁혀졌다. 과거 노량진 고시촌의 상징과 같은 '컵밥 거리'를 포함해 노량진 곳곳에 학원가가 자리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20층 높이의 메가스터디타워에는 공단기와 해커스 등 대형 공무원 학원과 함께 소방학원, 취업 지원센터 등이 들어와 있다. 점심시간 이 건물 주변 식당들은 수험생들로 가득 찼다. 1인당 7000원 안팎인 한식뷔페는 특히 인기였다. 이 식당 직원 김민수씨는 "공무원 인기가 시들했던 2~3년 전과 비교하면 최근 확실히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한 대형 공무원시험 학원 인근 한식뷔페에 손님들이 가득 차 있다. /사진=박형훈 기자


하지만 메가스터티타워에서 걸어서 5분 남짓 떨어진 '컵밥 거리'는 점심시간에도 썰렁했다. 오후 1시인데도 19개 점포 가운데 15곳이 문을 닫았다. 컵밥 거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문을 닫은 점포가 왜 이렇게 많냐'고 묻자 "다 같이 힘든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며 심드렁해했다.

30년간 이곳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해온 김윤철씨는 "공무원 시험 인기가 절정이던 2017년쯤엔 학생들이 밥 먹으려고 컵밥 거리에서 줄을 설 정도였고, 골목마다 고시원과 저렴한 식당, 서점 등이 있었다"며 "지금은 대형학원이 한 건물에 집중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너무 벌어졌다"고 말했다. 공단기 임성환 원장도 "과거엔 컵밥 거리 옆 건물 전체가 다 학원이었다. 대형 공무원 학원만 10개가 넘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컵밥 거리는 점심 시간인데도 대다수 점포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사진=박형훈 기자


2017년 약 23만명에 달했던 국가직 9급 공채 지원 인원은 2024년 이후 10만여 명으로 줄었다. 그 사이 노량진 고시촌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인터넷 강의가 확산되면서 작은 규모 학원들은 폐업하고, 큰 학원들은 통합했다. 골목 곳곳에 있던 독서실도 코로나19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청년 채용시장에 따라 울고 웃는 노량진 고시촌이 극심한 취업난과 함께 다시 꿈틀대고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역세권에 몰린 대형학원 중심으로 상권이 재편되고 있다. 한 상인은 "노량진 고시촌의 '반쪽 부활'은 점점 양극화되는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 것 아니겠느냐"며 씁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