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스1


북한 핵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묘한 발언을 계기로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김정은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던 지난해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밝힌 적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숫자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대화의 목표가 여전히 비핵화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그는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올해 안에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전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월 중국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이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발언을 포함해 최근 들어 북한에 대한 유화적 손짓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 16일에는 북한이 적대행위로 여기는 한미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북한에 대한 사실상 핵보유 용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야당인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자체 핵무장론'이 다시 부상하는 중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미국이 북핵을 '비핵화'에서 '관리'로 목표를 전환한 것 같다"며 "대한민국의 자위적 핵무장에 대한 국가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박충권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지난 18일 한미연합훈련 축소와 관련한 논평에서 "제한적 핵무장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16일에는 안철수 의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종전 언급'과 관련해 "비핵화 없는 종전은 곧 북핵 인정"이라며 "핵 독트린과 핵무장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핵무장에 찬성하는 여론도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중앙일보·동아시아연구원(EAI) 공동조사(7월 20~21일 실시)에서 자체 핵무장 찬성 응답은 69.1%로 전년(67.5%)보다 올랐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는 찬성여론이 점점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는 "여론조사는 일종의 생물 같은 것"이라며 "남북 평화무드가 조성되면 낮아지지만 남북 간 대결구도가 강화되거나 지금처럼 북핵이 기정사실화되면 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자체 핵무장에 대한 판단은 신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추진할 경우 경제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다. 일본, 대만 등으로 이어지는 동북아시아 핵 도미노를 촉발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양 교수는 "핵을 가진 상태에서 대결 국면으로 가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선택지가 아니라"며 "인도·파키스탄과 우리는 다르다. 일본이나 독일도 핵을 원하지 않아서 안 갖는 게 아니라 국익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안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미 간 합의의 핵심은 결국 평화체제와 대북제재 완화"라며 "당사국(한국) 없이 일방적으로 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미 행정부의 대북 기조 변화도 예단할 순 없다는 평가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최근까지도 대북 정책의 목표는 비핵화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실제 미국의 정책 변화를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하고 싶은 대로 얘기하는 사람이고, 김정은이 응답했다는 발언도 사실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북한이 원하는 전면적 제재 해제를 미국이 받아주기 어렵고, 그러면 김정은이 움직일지도 회의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