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동행미디어 시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정용관 주필. /사진=조현호 기자


-예전에는 위스키도 드시고 했는데, 약주 가끔 하시나요?
▶내가 한번 갑작스럽게 넘어져서 왼쪽 눈이 잘 보이질 않아요. 그 시력이 아직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조심하느라고 술을 좀 덜 먹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 아무래도 조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말씀부터 해야겠네요. 김 대법원장님도 일찍 부모님을 여의셨더군요. 손자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을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8살 때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자손에게 애틋한 정을 보여주는 분은 아니었어요. 굉장히 냉정한 자세를 자손들에게 보였고,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겉으로 전혀 내색을 안 하시는 분이었어요.



-조부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이 위원장님의 자아, 가치관이나 국가관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민정 이양 과정에서 1963년 처음으로 정치 활동이 허용됐어요. 그때 우리 집에서 당시 야당이 창당을 선언했고, 할아버지가 창당을 주도했어요. 그 야당 이름이 민정당이에요. 정치 정(政)자 민정당이 1963년 5월 30일인가 창당됐어요. 저는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한 사람이에요.
정당 창당의 소용돌이 속에서 할아버지 명예 실추 걱정돼 옆에서 실질적인 비서 노릇을 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야당 정치인 가운데 거의 만나보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윤보선 씨 등 당시 거물이라고 하던 야당 정치인들을 거의 다 만나봤어요.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이 군으로 복귀한다고 했다가 취소하는 등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다 봤어요. 당시 흔히 유행하던 말로 사쿠라가 만발하지 않았는가….


"정치인이 쓴 각서는 효력 없어"

-당시 정치 상황을 지켜보니 어땠나요.
▶ 허정 씨가 신정당이라고 창당준비위원회만 만들었고, 이범석 장군은 민우당이라고 해서 창당 준비만 했어요. 당시 민정당에서 실력파라는 사람들은 주로 윤보선 씨 계열로, 유진산 씨를 필두로 한 사람들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느닷없이 "야당 단일화를 합시다" 하고 나왔어요. 허정 씨 쪽에서도 자기 나름대로 야심이 있으니까 야당을 단일화하자고 했어요.
그 단일화가 되겠어요. 당시 대통령을 하겠다고 덤벼든 사람이 윤보선, 허정 두 사람인데 그 둘 가운데 누가 양보하겠어요. 당시 윤보선 씨가 각서를 썼어요. "나는 건전 야당의 탄생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만 하지, 당직이나 대통령 후보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요. 그때 할아버지께서 저를 보고 "정치인이 쓴 각서는 효력이 없다. 법률적으로"라고 말씀하셨어요.
결국 야당 창당대회가 아사리판이 돼서 열흘 동안 치고받고 싸웠어요. 당시 언론은 "5·16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개탄했어요. 결국 허정, 윤보선 두 사람 모두 야당 후보로 나왔어요. 박정희 씨는 공화당 후보가 됐고요. 결국 허정 씨가 처음 일주일 정도 해보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해 스스로 사퇴하면서 윤보선 씨로 단일화됐지만, 15만 표 차이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그때 경험으로 '정치인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에도 각서 파동이 한 번 더 있지 않았습니까. 내각제 각서….
▶ 노태우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하면서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내각제를 하겠다는 각서를 썼어요. 그때 제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그랬어요. "각서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것을 믿고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니까 잊어버리십시오."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하지만 노 대통령은 세 사람이 약속한 것이니까 가능할 것이라고 착각을 한 거죠.



-김병로 대법원장은 한 10년 가까이 재임하시고 57년쯤 그만두셨죠. 우리나라 사법시스템 초석을 다 깔아놓으셨는데….
▶법전편찬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법의 초안을 거의 다 쓰셨어요. 그러니까 최근 문제가 되는 형사소송법도 아마 열심히 초안을 만드셨다고 봐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대담에 앞서 조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사진 앞에서 포즈를 위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사진=조현호 기자


"정권은 검찰 활용, 검찰은 정권 아부하다 저 꼴 된 것"


-그 점에서라도 최근 뉴스(검찰개혁, 사법개혁)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 최근에 이야기하는 검찰 개혁이나 사법 개혁은 무엇을 개혁하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지금의 제도가 잘못돼서 오늘날 검찰이 저렇게 되고, 무슨 제도가 잘못돼서 사법부가 저렇게 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잘못돼서 그 제도를 망가뜨린 거예요. 예를 들어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검찰을 활용하고 경찰을 활용했어요. 박정희 정부가 수립된 뒤에는 검찰이 소위 '권력의 시녀'가 됐어요. 그러니까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예요.
지금 검찰은 무조건 기소만 하고 수사는 경찰이 한다고 돼 있어요. 그러면 경찰 역시 권력자가 자기 목적을 위해 이용하면 과거랑 별 차이가 없을 거에요. 맹목적으로 무슨 개혁만 한다고 그럴 게 아니라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구분해 시정이 돼야지. 권력자가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검찰 개혁 논리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틀어쥐고 너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요.
▶아니 근데 그게 통제가 안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지. 그 사람들이 사실 정권 눈치를 보고 정권이 뭐 시키는 대로 하느냐 안하냐에 달려 있는 거에요. 자기들이 소신 없이 정권 눈치 보고 정권에 아부해서 출세하고 싶으니까 결국 오늘날 검찰이 저 꼴이 된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미 중수청과 공소청으로 분리되고 검사 수사권은 없어지고, 보완수사권도 없어지고, 10월부터는 그대로 시행이 되거든요. 72년 만에 우리 형사사법 체계를 대수술하는 거라고 합니다. 또 이 정부 들어와서 대법관수를 26명으로 늘리고 재판 소원제도 시행하고 법왜곡제도 만들고….
▶지금 검찰개혁하고 사법개혁한다고 하는데 법관이라는 사람들은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법과 양심에 의해 판단하는데, 그런 법관이 지금 3000명이 넘어요. 그 사람들의 머리를 무슨 형태로 다 개혁한다는 거예요. 권력자들은 대법원 장악하면 사법부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할 수가 없어요.
국민 과반수가 지난번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재판에서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했어요. 거기에서 사법부 개혁이 촉발됐다고 봐요.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세요.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 선거에서 선거법을 위반한 사건은 1·2심에서 유죄가 됐는데, 대법원이 무죄 파기환송해서 살아났어요. 그래서 오늘날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거예요.
어느 한 사건의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했다고 해서 법원 전체를 사법 개혁해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대법원 우둔… 대법원장 단순히 법기술자 역할 안돼"

-대선 한달쯤 전에 대법원이 파기환송했는데, 이게 어디까지 사법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거냐는 논란이 있었어요.
▶ 저는 지금 대법원장의 머리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법원장 정도라면 단순한 법규만 가지고 판단할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너무 성급하게 해서 오늘과 같은 사태를 자초했어요. 대법원이 스스로 우둔한 짓을 했다고 봐요.

-대선 끝나고 조 대법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든지, 또는 탄핵 얘기도 있었는데, 거기까지 가야 하는 건지 정치적으로 뒤섞여 있습니다.
▶ 조 대법원장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판단해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빨리 파기환송한 것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데 그분이 대통령이 됐으면 사실 물러나주는 것이 정상인데, 그걸 또 못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대법원장은 단순히 법기술자 역할만 해서는 안 돼요.

-그런데 대법원장이 그렇게 물러나면 그게 사법부 독립성 침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거는 사법부의 독립성과는 별개의 사항이에요. 전원합의체 넘어가게 된 과정은 조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굉장히 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최근 민주당에선 탄핵 얘기가 나옵니다. 탄핵으로 대법원장 문제 다루는 게 적절할지요.
(하지만) 지금 시기적으로 탄핵을 또 거론하는 건 난 옳지 않다고 보고….


"윤석열, 정치를 모르는 사람"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가죠. 이승만 대통령 빼고 윤보선 이래 모든 대통령을 직접 경험해 보신 분은 지금 대한민국에 없을 것 같아요. 권력이란 무엇인지 느끼신 바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선거를 통해 권력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리고 소위 삼권분립이 제대로 짜여서 서로 견제하면서 나가는 게 민주주의 국가의 본질이에요. 그런데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자꾸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거예요. 그러니 그거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게 선거라는 제도에요.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때 신익희 후보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쉽게 대통령이 됐어요. 하지만 그때 이 대통령이 얻은 표를 보면서 경각심을 얻었어야 해요. 이후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에서는 자유당이 딱 한 석만 당선되고 다 떨어졌어요. 민주당은 다 당선됐고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른 거예요. 그러니 자유당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아주 계획적으로 부정선거를 한 거예요. 결국 4·19가 일어나 무너져버렸어요.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에도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에 1.2% 뒤지지 않았어요? 그것이 도화선이 돼 야당이 국회에서 강력하게 대처했고, 그 파장으로 부마사태가 이어졌어요. 부마사태 같은 것이 터지면서 결국 박 대통령이 돌아가시게 된 거죠. 선거에서 졌으면 왜 졌는지 분석을 하고 적응해야 하는데, 그걸 도외시하고 내 권력으로 것 모든 걸 만들고 치우면 된다, 이러면 안되는 거에요.

-그게 왜 안될까요.
▶ 권력을 잡은 사람과 그 권력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소위 타고난 위대한 정치인은 사람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상황의 변화를 제대로 알아야 해요.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지 못하면 안 돼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과거 권력자들을 보면 상황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어요. 그러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가장 극명한 사례가 지난 계엄 사태 아니겠습니까.
▶ 사실 지난번 계엄 사태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잖아요. 정치하는 게 뭔지를 모르는 사람이에요. 정치는 서로 대화하고 협상하면서 조화를 찾아 나가는 것이 본질인데, 그걸 모르는 거지. 아무래도 검사 생활만 했던 사람이니까. 제가 초기에 1년 정도 윤 대통령과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그때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소야대 국회이기 때문에, 여소야대 국회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를 잘 준비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것을 못해요. '내가 대통령이면 내 맘대로 하면 다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다른 거 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역사는 반복된다"

-위원장님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를 읽으면서 제가 공감했던 진리가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니까 그런 거예요. 프랑스 드골 대통령 보세요. 영광스럽게 58년에 출연했던 사람이 69년 초에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된 거 아니에요. 프랑스 사회는 변했고 국민의 의식도 변한 거 예요. 근데 그걸 인식을 못하니까 결국은 자기가 그 성화에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된 거예요.
제가 1975년 이맘때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절대빈곤을 해소했는데, 왜 나한테 이렇게 반항하는 사람이 많으냐,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 말이야. 절대빈곤이 해소되고 사람들이 먹고살게 되니까 다른 욕구가 생겨나게 돼 있는데, 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정치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어요.

-위원장님께서 박정희 정권과 인연을 맺고, 의료보험과 재형저축을 만들고 부가가치세 도입 반대했던 게 다 그런 맥락인거죠?
▶그런 거죠. 근로자 숫자만 따져도 1960년대에는 40만∼50만 명 정도였는데, 1975년 중반에는 400만 명 가까이 됐어요. 그 사람들이 사회의 큰 세력이 됐는데, 그들을 포용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 문제를 풀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그 과정에서 의료보험을 만들었어요.
의료보험을 만드는 과정에서 반대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했어요. 우리나라의 소위 경제부처 장관들이 전부 반대했어요. 심지어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사람까지 반대했어요. 박정희 대통령 혼자만 그 필요성을 이해했어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체계를 잡기 시작한 거예요.
부가가치세의 경우에는 제가 무조건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에요. 당시에는 아무도 모르는 세금인데 그것을 갑자기 도입해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고 본 거예요. 그 얘기까지 했어요. 세금의 역사는 혁명의 역사다 말이야. 세금을 함부로 도입하면 절대로 안 돼요. (부가세 도입으로) 결국 정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거에요. 지금의 부동산 세제도 제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경제수석이던 김용환 씨가 만나자고 해서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의 관계를 얘기해줬어요.
정치권력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우위에 있다가 경제 세력이 올라오면 비슷해지고, 조금 지나면 경제세력이 정치세력을 압도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2편으로 계속)

동행미디어 시대 유튜브 채널인 <시대TV>로 공개된 대담 장면.



◇김종인: 1940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외대를 졸업한 후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서강대 교수 재직 중 부가가치세 실시 문제로 정치와 인연을 맺은 후 의료보험 도입, 근로자재형저축 등에 기여했다.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고 관철시킨 장본인기도 하다. 한·소, 한·중 수교에도 기여했다. 5선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으며 여야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킹메이커'라는 별칭도 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한국 정치사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