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연쇄적인 정보유출로 법 개정 논의가 일고 있다. /그래픽=챗GPT


쿠팡을 비롯한 여러 기업에서 연쇄적인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피해 구제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과거보다 유출 규모가 커져 개인이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데다 기업들의 사후 대응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배상을 받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만큼 쿠팡 사태를 계기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까지 구제하는 집단소송법 도입과 소급 적용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화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 6월 쿠팡의 안전조치 미흡으로 회원 3322만여명과 비회원 최소 433만여명 등 3756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인증서명키와 접근권한 관리가 부실했고 유출 통지와 개인정보 파기 의무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정보위는 안전조치 의무 위반에 4235억7500만원, 타사 온라인 활동기록 무단 수집에 2011억660만원 등 과징금 6246억8100만원과 과태료 1680만원을 부과했다. 국내 개인정보 관련 과징금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과징금과 과태료는 기업의 법 위반에 대한 행정처분으로 국고에 귀속된다. 피해자가 손해를 배상받으려면 별도로 쿠팡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초 네이버 등에 개설된 집단소송 준비 카페 가입자가 25만명을 넘어섰지만 전체 피해자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현행 법에선 공동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판결 효력은 원고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에게만 미친다. 같은 피해를 입었더라도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피해자는 손해 배상을 받지 못한다.

집단소송제도는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사건에서 피해자 일부가 대표당사자로 나서 국가나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면 같은 피해를 입은 집단 전체에 판결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제도다. 동일한 원인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들이 각각 소송을 제기해야 했던 현행 민사소송 절차의 한계를 보완해 손해배상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집단소송법 도입 필요성을 밝힌 뒤 정치권에서는 관련 법안 발의가 잇따랐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박균택 의원(광주 광산구갑)안을 골자로 집단소송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을 집단소송에도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3년 소급 적용이 현실화하면 지난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쿠팡과 SK텔레콤 등도 새 집단소송제도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기에 소급 적용을 두고 법적 안정성 훼손과 기업 부담을 우려하는 여러 분야의 반대 의견이 국회에 제기됐다. 올해 5월 침해 사고가 발생한 티빙은 약 1953만명, 넷마블은 약 611만명, 롯데카드는 297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KT에서는 1만6647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이 가운데 368명은 약 2억4000만원 규모의 무단 소액결제 피해를 입었다.

기관과 기업마다 제각각인 피해자 통지와 보상 방식을 두고 소비자 불만도 이어졌다. 쿠팡은 지난 1월 정보 유출 피해 고객에게 쿠팡 전 상품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 트래블 2만원,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된 구매이용권을 지급했다. 쿠팡은 1인당 최대 5만원 상당의 보상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용처가 자사 서비스로 제한되고 사용 기한도 3개월에 그쳐 실질 보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KT 역시 직접적인 요금 할인 대신 추가 데이터와 OTT 무료 이용 혜택 등을 제공해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시각이 많았다.

옵트아웃 방식(기본적으로 포함되지만 원하지 않을때 제외, 제외신고형)이 도입되면 판결 효력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에게도 미친다. 피해자 1명당 배상액을 10만원으로 단순 계산하면 쿠팡의 잠재 배상액은 약 3조7560억원에 달한다. 실제 배상 규모는 유출된 개인정보의 민감성과 기업의 과실 정도, 2차 피해 발생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22대 국회에서는 집단소송법 외에도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입법도 추진되고 있다. 이훈기 의원(더불어민주당·인천 남동구을)은 기업으로부터 징수한 과징금과 과태료 등을 재원으로 개인정보침해피해자보호기금을 조성하는 내용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강명구 의원(국민의힘·경북 구미시을)이 대표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이미 유출된 개인정보가 보이스피싱이나 명의도용 등에 악용되는 것을 막고 처벌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