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 확대 논의가 불붙는 가운데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해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면서 집단소송제 확대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피해자의 실질적 권리 구제를 위해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산업계는 무분별한 소송과 경영 위축을 우려한다. 이에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제도를 참고한 단계별 절차 설계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집단소송은 피해자의 참여 방식에 따라 크게 '옵트인'과 '옵트아웃'으로 나뉜다. 옵트인 방식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소송 참여 의사를 밝혀야 판결의 효력을 받을 수 있다. 옵트아웃 방식에서는 피해자가 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판결의 효력이 전원에게 미친다.



정치권은 옵트아웃 방식을 통한 실질적 피해 구제에 무게를 둔다.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집단소송 확대는 이미 발생한 대규모 피해에 대해 실질적인 절차적 구제 수단을 마련하려는 것"이라며 "현장에서 지적하는 소멸시효 장기화 문제는 민사상 시효인 3년 수준에서 조율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옵트인·옵트아웃 형식에 집착하기보다 통일된 구제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조만간 본격적인 입법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옵트아웃 제도를 전면 도입할 경우 발생할 남소 피해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한석훈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한국은 이미 증권 분야에서 미국식 대표당사자 소송(Class Action)을 운용하고 있지만 이를 전 산업 분야로 확대하는 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본고장인 미국조차 남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미국식보다는 독일이나 일본처럼 공인된 소비자 단체가 중심이 되는 단체소송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해외 선진국들은 각자의 법 체계에 맞춰 남소 방지와 피해자 구제 사이의 균형을 모색해 왔다. 대표적 옵트아웃 국가인 미국은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판결 효력이 집단 전체에 미쳐 소송 편의성과 소액·다수 피해자 구제에 유리하다. 남소 가능성이 큰 만큼 법원이 원고 대표성, 공통 쟁점, 합의금 규모, 변호사 성공보수까지 엄격하게 심사한다. 소송 허가 단계에서 걸러내는 방식으로 화해금만을 노린 제소를 차단한다.



일본은 개별 피해자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하는 '2단계 옵트인' 제도를 채택했다. 1단계에서 정부가 인정한 특정적격소비자단체가 기업의 공통책임(법적 위반 여부)을 법원에서 확인받으면 2단계에서 참여를 희망하는 소비자들이 개별 피해액을 정산받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일정 요건 아래 정신적 위자료 청구를 허용하고 피고 범위를 임직원 개인까지 넓히는 등 구제 실효성을 높여가는 추세다.

한국형 제도는 일률적인 옵트인이나 옵트아웃보다 사건의 성격에 따라 절차를 달리하는 단계별 모델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법원이 먼저 기업의 공통 책임과 피해자 집단의 범위를 판단하고 이후 정보의 민감도와 실제 2차 피해 발생 여부에 따라 개별 배상액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손해배상 체계의 이원화와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유도하는 정책적 보완도 요구된다. 실제 발생한 금전적 피해는 전액 배상하되 법정 손해배상액은 기업의 규모, 평소 보안 투자 수준, 사고 직후 대응 태도 등을 종합 반영해 산정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보안 인프라가 취약한 중소기업에는 보안 바우처와 사이버 보험 가입 지원 등 정책적 안전망도 병행돼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제도 설계와 지원 대책이 함께 가야 피해 구제와 산업 부담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