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A씨는 올해 말 아파트의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2년 전 서울 강동구 고덕동 전용 84㎡ 규모의 아파트를 전세 8억5000만원에 계약했는데 최근 전셋값이 11억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보증금 인상을 요구하면 더 작은 평수의 주택을 알아보거나 생활권을 옮겨야 한다. A씨는 "아이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할 경우 학교생활까지 바꿔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집주인에게 기존 전세계약을 월세나 반전세로 전환할 수 있을지 물어볼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 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8·13주택 신속공급 방안을 통해 2030년까지 수도권 매입임대 14만가구를 착공한다고 했으나 당장 이사 갈 집이 없는 세입자들에게는 '그림 속 떡'일 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넷째주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0.11% 올랐다. 수도권은 0.20%, 서울은 0.22% 상승했다. 서울의 전셋값 상승폭은 0.22%로 전주 대비 0.03%포인트 확대됐다. 서울 주요 단지에선 전·월세 매물이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집주인이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도 돌아서면 사라지는 매물에 세입자들은 계약을 서둘러야 한다.
송파구 잠실동의 잠실엘스 84㎡는 2024년 8월 전세가 7억9000억원에 체결됐으나 최근 거래된 전셋값은 10억원으로 2억원 넘게 뛰었다. 강북도 마찬가지다. 노원구 중계동 롯데우성 115㎡아파드는 2024년 5월까지 8억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으나 지난 1월 계약된 전셋값은 9억원이었다.
롯데우성 단지 내 공인중개사 대표는 "과거에는 세입자들이 여러 물건을 비교하면서 보증금이나 월세를 조정해 계약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며 "현재 전세매물이 한 건도 없고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물건이 나오면 일단 잡아달라는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임대차 시장의 상황은 더 녹록치 않다. 정부의 8·3 세제 개편안 발표 후 전·월세 상승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세제 개편에 대응해 집주인이 실거주로 전환하면 임대 물량이 줄어들고 세입자에게 세금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세난을 잠재우려면 빠르게 주택을 공급하는 방법이 최고다. 용산공원을 특별법으로 개정해 용도를 변경하고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등 10년이 필요한 대규모 주택공급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소규모 필지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공급할 수 있는 주택을 공급하는 등 조속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1990년 정부가 도입한 다가구용 단독주택은 여러 가구가 함께 거주하되 단독주택으로 분류하고 가구별 분양을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기준 연면적 660㎡ 이하, 3층 단독주택으로 대규모 아파트 개발보다 짧은 기간에 임대공간을 늘릴 수 있는 경로를 열었다. 지하실과 옥탑을 개조한 무허가 셋방이 메우던 주거 수요의 일부를 제도권 공급이 흡수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임대차시장의 불안을 해소했던 정책을 살펴보면 공급 규모가 아니라 시장에 응답하는 속도가 주효했다. 월세 중심으로 재편되는 임대차시장에 세입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수급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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