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오전 7시30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서울역 3-2 승강장. 문이 열리자마자 열차 안에선 승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바로 앞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더니 대합실을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엘리베이터 앞엔 순식간에 긴 줄이 늘어섰다. 뒤늦게 도착한 이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에스컬레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GTX-A 서울역 승강장은 지하 50m 깊이에 있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면 지하 1층 환승장까지 30초 만에 올라갈 수 있다. 문제는 이 고속 엘리베이터가 단 2대뿐이라는 점. 첫 엘리베이터를 놓치는 순간, 환승 시간은 몇 배 늘어난다. 만약 고속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환승 대합실까지 7분이 걸린다. 14배 차이,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달린다.

첫 번째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느냐, 못 타느냐에 따라 환승 시간에 큰 차이가 나다 보니 매일 아침 출근길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날 만난 승객들은 한결같이 "매일 이렇게 뛰다 보면 회사 도착 전에 진이 빠진다", "왜 엘리베이터를 2대밖에 안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인파가 몰리는 출근 시간대 여러 명이 달리다 보니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GTX-A 서울역 평일 오전 7~9시 이용객은 1만2200여명으로 일평균 이용객의 22%, 5분의 1이 한꺼번에 몰린다. 이날도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승객이 뛰어오는 무리와 부딪힐 뻔한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운정중앙역에서 서울역으로 출퇴근하는 이유진씨(25)는 "뛰다가 넘어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며 "다칠까 봐 걱정이 되지만 내 지각이 더 걱정돼 뛸 수밖에 없다"고 했다. GTX-A 측은 대합실 곳곳에 '뛰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을 부착하고 안전 요원을 배치하고 있으나 바쁜 직장인의 발걸음을 붙잡기엔 역부족이다.

승강기 민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24년 12월 개통 이후 지난 24일까지 운영사에 접수된 승강기 관련 민원은 44건이다. 다만 국토부는 엘리베이터 증설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역 지하는 이미 1호선·4호선·경의중앙선·공항철도 선로가 지나고 통신선, 상하수도, 전력관 등 구조물이 많다. 이 구조물을 모두 피하면서 지상까지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공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환승 전쟁'이 벌어지는 건 서울역만이 아니다. 지상에서 수직으로 약 83m 아래 건설된 서해선 김포공항역도 환승장까지 오르는 데 오래 걸리기로 유명하다. 지하 5층 승강장에서 환승대합실이 있는 지하 2층까지 가려면 에스컬레이터를 최소 4번 타야 한다. 특히 지하 3층~4층 구간에선 48.5m짜리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 거쳐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에스컬레이터를 두고 승객들은'천국의 계단', '막장 환승 구역'이라고 부른다.
서해선 김포공항역도 지하 2층까지 올라가는 고속 엘리베이터가 2대인데, 안전 문제로 엘리베이터 탑승객을 12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정원이 적다보니 서울역과는 반대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려고 인파가 몰려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경기 시흥시에 사는 김모씨(45)는 "5호선 발산역에 가기 위해 김포공항역에서 갈아탄다"며 "환승 구간이 길어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출근 시간이 20분이나 단축됐다"고 말했다.

향후 신설될 GTX B·C 노선에서도 '환승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 거점을 가로지르는 급행 철도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직선 노선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기존 선로가 지나는 곳을 피해 자연스럽게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긴 수직 환승 동선은 대심도(大深度) 철도 시대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선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출근길 러닝 크루' 영상의 조회수가 500만 회를 넘어 큰 화제가 됐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장거리 통근·통학하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은 '저는 경의중앙선 러닝 크루예요', '출근 전쟁 말로만 들었는데, 영상 보니 정말 치열하네요', '한국 직장인들 눈물 날 정도로 열심히 산다'와 같은 댓글을 달고 공감을 표시했다.
수도권 교통망이 촘촘해질수록 환승 편의성 검토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요구를 반영해 2023년부터 환승 편의성을 기본계획 수립 때부터 검토하도록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됐다. 다만 GTX-A 서울역이나 서해선 김포공항역은 법 시행 이전에 건설이 추진돼 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박태윤 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수도권의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선 결국 환승이 편리해야 한다"며 "대심도 철도 역사 이용자의 원활한 환승을 위해 고속 엘리베이터 등 수직 이동시설의 적절한 배치를 설계 단계부터 고민해 환승 거리와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대와의대화] “대통령 되면 구름 위에… 땅이 잘 안 보여” |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③](https://i.ytimg.com/vi/b6N_5QFrGjA/hqdefault.jpg?width=1920&quality=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