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묵히 변함없이'
SK하이닉스가 선보인 '초심' 기업PR 캠페인이 화제다. 인공지능(AI)이 카피를 쓰고 이미지를 만드는 시대에 SK하이닉스는 최근 100% 수작업으로 완성한 광고를 공개했다. AI 시대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히는 굳이 수작업을 택했다고 밝혀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광고 한복판에는 지구본 모형이 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인쇄된 그림이 아니다. 신문 기사 헤드라인을 하나하나 오려 층층이 쌓아 만든 부조다. 대륙의 굴곡도, 해안선도 활자 조각으로 표현했다.
지구본을 채운 건 SK하이닉스의 지난 43년이고 밑을 받치는 건 시련의 기록이다. '현대전자, 하이닉스반도체로 회사명 변경', '하이닉스 임직원 순환 무급휴직 실시', '워크아웃 졸업 임박 하이닉스, 눈물 그쳤지만 도전은 계속'. 그 위로 성취의 기록을 겹겹이 쌓았다. 'SK하이닉스 공식 출범', '하이닉스 황금알 HBM 그 뒤엔 10년 뚝심 있었다', 'SK하이닉스 세계 최초 HBM4 개발 완료 양산 체제 구축', 'SK하이닉스 작년 매출 97.1조·영업익 47.2조 사상 최대실적'.
성공한 기록만 골라 담지 않았다. 채권단 관리, 무급휴직 등 버텨야 했던 시간이 지구본의 밑동을 이룬다. 그 위에 기술 개발과 사상 최대 실적의 기록이 얹혔다. SK하이닉스가 말하는 '초심'도 이 구조에 담겼다. 수많은 시련과 변화, 성장의 순간을 거쳤지만, 기술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광고 카피는 딱 한 줄, '묵묵히 변함없이'다. 회사는 광고에서 "많은 부사가 있지만 더 매력적인 표현들도 있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부사는 이것"이라며 '묵묵히 변함없이'를 강조한다. 화려한 말은 아니지만 좋은 날이나 어려운 시기나 같은 자세로 업(業)에 임해왔다는 의미다. 로고 맞은편 오른쪽 아래에는 '초심' 두 글자를 원형 심벌로 새겼다.
수작업이라는 형식 자체에도 의도가 있다.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을 활용하면 이미지를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번 캠페인에서는 사람의 눈과 손으로 수많은 신문 조각을 직접 오리고 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작은 요소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펴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반도체를 만드는 태도와 같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현재 위치는 예전과 딴판이다. 2025년 매출 97조1467억원, 영업이익 47조2063억원, 순이익 42조9479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영업이익률은 49%였다. 투자업계에선 올해도 매출 346조원, 영업이익 267조원으로 기록을 다시 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술 경쟁력도 성과로 이어졌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했으며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로 세대를 거치는 동안 시장의 과반을 거머쥐었다. 선도 기업 입지는 그렇게 굳어졌다.
지난해 9월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개발을 마치고 세계 최초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지난 7월에는 미국 나스닥에서 주식예탁증서(ADR) 거래를 시작했다. 첫 거래일 종가는 168.01달러를 기록해 공모가 149달러보다 12.76% 높았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AI 투자가 불붙으면서 HBM 수요가 폭발했고 SK하이닉스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최대 실적은 동시에 다음 사이클을 준비해야 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AI 투자 과열 논란이 제기되는 것도 변수다.
호황의 한복판에서 회사가 꺼낸 말은 '묵묵히 변함없이'다. 이번 광고를 옛날얘기로만 읽기 어려운 대목이다.
SK하이닉스는 나스닥 상장 때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 40여 개를 통해 대규모 캠페인을 펼치며 글로벌 시장을 향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번에는 손으로 만든 지면 한 장을 통해 밖을 향했던 성장 메시지를 내부의 태도와 본질을 되새기는 쪽으로 틀었다.
'초심' 캠페인은 이번 광고를 시작으로 모두 3편이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편마다 다른 조형 작품과 메시지로 기술을 대하는 태도를 풀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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