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1일 취임 약 1년 3개월 만에 물러났다. 사진은 지난 6월13일 호텔현대 바이 라한 울산에서 열린 K조선 미래비전 간담회에 참석 모습. / 사진=뉴스1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격 사퇴했다. 6개 부처 장관을 교체한 개각에서 유임된 지 하루 만이다.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부동산 정책 실패 책임론을 청와대가 사실상 받아들이는 경질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배당금제 논란 등 SNS 소통의 역풍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경제부총리·국토교통부 장관에 이어 정책실장까지 교체되면서 김 전 실장의 행정고시 6기수 후배인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새 경제라인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1일 청와대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지난달 30일 개각에서 유임된 이튿날인 31일 사의를 표명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사표를 수리했다. 김 전 실장은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 초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뒤 약 1년3개월 동안 경제·산업·재정 분야 정책 입안과 국정과제 이행을 총괄했다. 추가경정예산 등 확장 재정과 자본시장 활성화, AI(인공지능), 3대 메가프로젝트 육성 정책 등을 담당했다.



그러나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등 정책 결정을 둘러싼 논란이 잇따랐다. 김 전 실장은 지난 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금융위원회에 '나스닥에선 가능한 것을 왜 국내에서는 못 하게 하느냐'고 문제제기를 했고 (정책 부서에) 관련 검토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같은 달 증권사·자산운용사 대표들과 만나 도입 필요성을 논의했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종목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 5월 말 상장됐다. 이후 코스피가 급등락하면서 개인투자자 손실이 불어나자 김 전 실장에 대한 사퇴·경질 요구가 커졌다.

해명은 논란을 키웠다. 김 전 실장은 7월28일(현지시각) 이 대통령의 브라질 국빈 방문을 수행하던 중 상파울루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것이 레버리지 ETF 때문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변동성이 큰 건 개인투자자들이 굉장히 역동적으로 투자를 하고 두 회사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권은 책임 인정 대신 변명을 늘어놓았다며 국정조사와 특검을 거론했다.

시장에 직접 충격을 준 것은 지난 5월 '국민배당금' 발언이었다. 김 전 실장은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5월12일 페이스북에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이 끌어낸 결과가 아니다"라며 초과 세수 일부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국민배당금제를 거론했다. 블룸버그 등이 이를 AI 수혜 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횡재세 예고로 해석하자 외국인이 반도체 양대 종목을 수조원어치 순매도하며 코스피가 하락했다.



김 전 실장은 세금이나 부담금 신설이 아니라 AI 붐으로 늘어난 초과 세수를 활용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고 청와대는 내부 논의와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사회주의적 발상이자 포퓰리즘이라며 경질을 요구했고 여당 안에서도 정책실장의 언어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두 사례가 남긴 문제는 모두 소통 방식이었다. 시장과 직접 소통하기 위한 SNS 실험은 신뢰 훼손이라는 결과를 남겼다. 정책실장이 시장 참여자를 직접 만나거나 SNS에 구상을 띄우면 그 말은 시장에서 정책 신호로 읽힌다. 개인 의견과 청와대 입장이 갈라지면서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가 함께 흔들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1월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이 김용범 정책실장. / 사진=뉴스1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날 [시대]와의 통화에서 "김 전 실장은 재임 시절 반도체 호황으로 얻은 초과 세수를 활용해 국민배당금을 논의하자는 말실수와 레버리지 ETF 도입으로 논란을 자초했다"며 "말실수도 문제지만 그 뒤 해명에서 '개인투자자가 역동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등 민심 악화를 불렀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은 여론 악화의 다른 이유였다. 시장 불안을 해소할 주택공급 대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초고가 주택과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세부담 정책이 부각됐다. 야권은 김 전 실장을 부동산·증시 정책 실패의 '몸통'으로 지목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하락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부동산 정책 등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적 쇄신이 불가피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했고 인적 쇄신을 통해 반등을 모색하는 의지로 보인다"며 "부동산 민심이 악화하고 부동산 시장은 잘못 건드려서 상승하던 흐름을 하락세로 만들었기 때문에 정책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인사 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날 정책실장 사퇴로 부총리·국토부 장관 교체에 이어 경제라인 전면 재편이 마무리됐다. 김 전 실장은 행정고시 30회, 이 후보자는 36회다. 두 사람 모두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재무부·재경부·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거쳤다. 김 전 실장은 금융위 국장·부위원장·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낸 금융통이고 이 후보자는 기재부 경제정책국장·통계청장·재경부 1차관을 지낸 거시통이다.

정치권에선 김 전 실장의 다음 행보로 2028년 총선 출마나 2030년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도전 가능성이 거론된다. 전남 무안 출신으로 문재인·이재명 두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이력이 근거다. 다만 관료 출신으로 선출직 경험이 없고 논란을 안고 물러난 점은 변수로 꼽힌다.

김 전 실장의 사퇴에 따라 청와대 정책실 내 연쇄 이동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대통령이 그간 정책 추진의 연속성 등을 고려해 내부 승진 발탁을 선호해 왔다는 점에서다. 다만 청와대는 후임 인선 계획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박충권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진정으로 바뀌어야 할 것은 참모의 얼굴이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 그 자체"라면서 "'민생 폭망'의 본질은 대통령의 오만한 국정 운영과 실패한 경제 철학에 있다"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실패한 국정 기조를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라"고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과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 8월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