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PF 자금 공급을 늘리는 가운데, 금융권은 시장 정상화 기대와 부실 재발에 대한 경계심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인근 아파트 건설 현장./사진=뉴시스


"이복현 전 원장님, 참 호불호가 엇갈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긍정적 평가를 받는 부분이 있어요. 비은행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정리한 게 대표적이예요." 얼마 전 금융감독원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다가 나온 얘기다.

마침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PF 시장에 자금이 돌도록 하는 방안이 나온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부실 PF가 상당 부분 정리됐다지만 아직 완전히 정상화된 것은 아니다. 기자가 만난 금감원 관계자들은 공급 확대와 금융회사 건전성 관리가 함께 가야 한다며 이를 '고차방정식'에 비유했다.



당시엔 다소 원론적인 얘기로만 들렸다. 그런데 최근 금융권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말이 현장에서 실제로 고민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 년간 PF 부실로 크게 고생했던 저축은행권에서는 의외로 걱정보다 기대가 먼저 나왔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부실채권 시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매수자가 없으니 가격은 내려가고 그마저 거래되지 않아 부실자산을 털어내기도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에 나선다거나 정상화펀드, 신디케이트론 등을 통해 시장에 매수 주체와 자금이 들어올 수 있다는 자체를 반기는 분위기다.

증권업계에서도 비슷한 기대가 읽힌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공적 보증 확대는 금융회사가 떠안아야 할 위험을 덜어 브릿지론에서 본PF로 넘어갈 수 있는 여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결국 "자금이 돌아야 산다"며 이번 조치를 반겼다.



'좋다'는 말 뒤에는 단서가 있었다. 몇 년간 PF 부실을 겪었던 만큼 자금 여력이 생겼다고 곧바로 새 대출을 크게 늘릴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은 이번 대책을 신규 PF 확대의 신호라기보다 그동안 팔리지 않던 부실 PF를 정리할 통로가 넓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증권사 역시 기존 사업장과 PF 투자·대출 자산을 정리하는 게 여전히 우선이다. 새 돈을 넣더라도 여력이 있는 대형사와 사업성이 확인된 우량 주거사업장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움직이겠다는 분위기다.

조심스러울 만한 이유도 있다. 금융당국이 가장 최근 공개한 자료를 보면 금융권 PF 익스포저(위험노출 규모)는 2024년 6월 216조5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169조8000억원까지 줄었다. 상당한 정리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PF대출 연체율은 4.65%, 유의·부실우려 여신도 16조4000억원이나 된다. 과거 금융권을 괴롭히던 수년 간의 부실을 완전히 털어냈다고 말하기는 이른 셈이다.

반면 정부는 일단 주택공급이 급하다. 수십 조원에 달하는 돈을 풀면 주택이 당장이라도 막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택공급을 위한 금융지원 규모를 26조3000억원에서 47조8000억원+α로 확대하고 PF 보증도 올해 23조원, 내년 33조원 공급하기로 했다. 지난 28일에는 금융·건설업계 관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금융권에 적극적인 자금공급도 주문했다. 그런데 업계도 나름대로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점심 자리에서 들었던 '고차방정식'이 다시 떠오른 이유다. 정부는 주택공급을 늘려야 하고 금융사는 또다시 부실을 떠안지 않아야 한다. 어느 한쪽만 놓칠 수 없는 문제다. 다시 풀리는 PF 자금이 멈춰 있던 사업장을 움직이면서도 새로운 부실의 씨앗을 남기지 않을 수 있을지, 이제부터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