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25일 청와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신임 지도부 만찬 간담회에서 김민석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세제 정책을 이끌어온 핵심 라인이 사실상 전면 교체됐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에 이어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물러나면서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실거주 중심의 시장을 만들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당장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향후 부동산·세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용범 실장은 지난달 31일 사의를 표명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1일 사표를 수리했다.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지 약 15개월 만이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구 부총리와 김윤덕 장관을 교체하는 내용의 개각을 단행했다. 구 부총리 후임에는 이형일 재경부 1차관, 김윤덕 장관 후임에는 홍지선 국토교통부 2차관을 각각 후보자로 지명했다.



청와대는 김용범 실장의 사퇴 배경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이후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며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된 데다 지난 8월3일 발표된 세제개편안을 둘러싼 민심 악화까지 겹치면서 정책을 총괄해온 김용범 실장에 대한 책임론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정책라인 재편을 계기로 청와대와의 정책 조율 과정에서 민주당의 발언권이 이전보다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김민석 민주당 대표와 청와대의 관계가 이전 지도부 때와 달라졌다는 점이 거론된다. 김민석 대표는 정청래 지도부 때와 비교해 주요 현안을 놓고 청와대와 적극적으로 교감하며 정책 조율에 관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25일에도 김민석 대표는 이 대통령과 독대해 인요한 전 국민의힘 의원의 대한적십자사 회장 인준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고, 청와대도 이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김민석 대표는 이재명 정부와 소통을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하는 편으로 알고 있다"며 "김 대표가 국무총리를 지낸 만큼 정부의 정책 기조와 주요 현안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 향후 당정 간 정책 조율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 개인 성향도 상대방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받아들이는 편"이라며 "정청래 전 지도부 때보다 당정 간 의견 교환이나 정책 조율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겠나 싶다"고 했다.

여기에 정책실장 교체를 비롯한 경제정책 라인의 대대적인 재편도 영향을 미친다. 김용범 실장은 정부 출범 때부터 경제·산업·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며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상당한 장악력을 발휘해왔다. 새 정책실장이 부임하더라도 정권 출범 초기부터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해온 김 실장과 같은 수준의 영향력을 단기간에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부총리와 국토부 장관까지 함께 교체되는 만큼 새 정책라인이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당이 청와대와 정부 사이의 정책 조율에 관여할 공간이 상대적으로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당의 영향력은 최근 종합부동산세 조정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달 3일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비거주 1주택자의 종부세 기본공제를 현행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낮추고 세 부담 상한은 150%에서 200%로 높이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정부안에는 비거주 1주택자의 기본공제와 세 부담 상한을 각각 현행 12억원과 150%로 유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초 추진했던 과세 강화 방안의 상당 부분을 거둬들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정부안이 1주택자의 세 부담을 지나치게 키울 수 있다며 지속적으로 보완을 요구했다. 김민석 대표는 지난달 23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불가피하게 실제 거주를 하지 못하는 1주택자의 사정을 폭넓게 반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정 협의 과정에서는 민주당이 1주택자의 종부세를 거주 여부에 따라 크게 차등하는 데 반대한다는 의견도 정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민 대표는 "대통령의 힘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정책 주도권도 점차 청와대에서 여당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며 "특히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서울 지역 의원들은 지금의 부동산 정책 기조로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고 판단해 계속 수정을 요구할 것이다. 이미 그런 시기에 들어섰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는 대통령이 기존 정책 기조를 강조하더라도 이를 실제 법과 제도로 관철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며 "결국 당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강하게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다만 이번 조정이 이재명 정부 부동산 정책의 전면적인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일부 종부세 부담을 완화했지만 투기 수요 억제와 실거주자 우대, 고가주택에 대한 과세 강화 기조는 유지하고 있다.

박 대표는 "다만 투기 수요 억제와 실거주 중심이라는 부동산 정책의 기본 기조 자체를 명확하게 바꾸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미 정책에 대한 말과 실제 조치 사이에 차이가 생기면서 어느 한 방향으로 선명하게 전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했다. 이어 그는 "정책을 충분히 숙의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발표한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