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도심 센트럴역에서 걸어 10분이면 트램 승강장이다. 트램을 타고 7분만 가면 해발 396m 빅토리아피크에 도착한다. 고온다습하고 답답한 홍콩에서 쾌적하고 탁 트인 빅토리아피크는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해방구 같은 곳이다. 2019~2022년 120인승에서 210인승으로 교체됐다.
서울에서는 남산이 빅토리아피크 같은 역할을 하지만 접근성은 홍콩에 크게 뒤처진다. 명동역에서 케이블카 승장장에 가려면 언덕길을 약 20분 걸어야 한다. 정상으로 직행하는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48인승 2대인데 그마저도 낡았다. 1962년에 개통한 뒤 지금까지 줄곧 캐빈 2대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최대한 가동해도 시간당 400~500명을 실어나르는 게 한계다.
1960년대 이후 국내외 남산 방문객이 비약적으로 늘었음에도 운송수단에는 별다른 발전이 없는 셈이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수요를 분산하려면 대체 이동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남산 방문객 급증에도 케이블카는 그대로

6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남산공원 이용객은 1192만명으로 2019년 982만명 이후 6년 사이 21% 늘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한 영향이 크다. 서울AI재단이 지난해 서울 주요 명소 16곳의 외국인 유동인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남산의 N서울타워는 일평균 5만7370명으로 명동에 이어 2위였다. 삼성역·코엑스(3위), 강남역(4위), 홍대(5위)보다 많다.
서울기록원 소장 자료를 보면 1977년 남산의 대표 명소였던 남산식물원의 방문객은 연 20만명에 불과했다. 1962년 케이블카 개통 때 남산 방문객 수를 보여주는 통계는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사회경제적 여건에 비춰볼 때 이 수준을 크게 웃돌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남산 케이블카 이용객은 지난 20년 사이 4배 이상으로 늘었다. 2015년 서울시의회 '남산케이블카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2005년 이용객은 41만7000명이었다. 지난해에는 170만명이 탔다. 그 사이 설비는 그대로다. 1962년 개통 당시 20인승이던 캐빈이 48인승으로 커졌을 뿐 두 대가 오가는 방식은 64년째 같다.
2019년 이후 남산공원 이용객이 20% 이상 늘었지만 케이블카 이용객은 큰 변화가 없다. 2019년 172만명이던 이용객은 ▲2023년 167만명 ▲2024년 174만명 ▲지난해 170만명으로 제자리다. 케이블카가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했다는 얘기다.
과거에는 관광버스가 연 170만명을 실어날랐지만 2021년 이후 운행이 중단됐다. 순환버스가 있지만 정류장에서 정상까지 350m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고 이마저도 붐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말과 평일 저녁에는 항상 만원이고 약 40~50분을 기다린다"며 "아예 이용을 못 하고 도보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남산공원 이용자 가운데 거의 절반(537만명)이 걸어서 산을 올랐다. 운송수단 부족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교통약자에겐 더욱 먼 남산 정상

장애인·어린이·노약자 등 교통약자에게 남산 정상은 더욱 먼 곳이다. 유일하게 직행할 수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은 언덕 중턱에 있다. 2009년에 만든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장애인이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논란이 개통할 때부터 있었다.
노후화된 케이블카 시설의 안전 문제도 제기된다. 케이블카 운영사인 한국삭도공업은 "60년 이상 큰 사고 없이 운영해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서울시의회 자료 등에 따르면 2019년 7월 안전펜스 충돌로 7명이 다쳐 케이블카 조작원이 업무상과실치상으로 입건됐다. 2009년에는 돌풍으로 캐빈이 철탑에 충돌해 승객 15명이 2시간 20분간 갇히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남산 케이블카 노선이 하나뿐이어서 사고가 나면 남산 정상으로 직행하는 방법은 사라진다.
안전하고 접근성 높은 대체 이동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병민 G3서울 기획위원장은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 중에도 교통 약자가 많다"며 "그런 분들이 남산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이 참고사례로 거론된다. 대만 타이베이시는 2007년 마오콩 곤돌라를 설치했다. 지하철 종착역에서 350m 거리에 승강장을 두고 요금 체계도 지하철과 통합했다. 4km 구간에 8인승 캐빈 147대가 운영된다. 네 개 역 모두 엘리베이터를 갖춰 휠체어와 유아차가 그대로 탑승할 수 있다. 곤돌라 운영은 타이베이시 정부가 맡는다.
서울시가 건설을 추진 중인 곤돌라도 유사한 접근을 따른다. 하부승강장은 명동역 1번 출구에서 200m 떨어진 평지에 있다. 10인승 캐빈 25대가 시간당 최대 2000명을 태운다. 총사업비 440억원 전액이 시 예산이고 운영은 서울시설공단이 맡는다. 민간은 시설의 소유, 운영, 수익에 아무런 지분이 없다. 확보한 수익금은 조례에 따라 남산 생태 보전과 시민 여가에 쓴다.
장애인 단체에서도 남산 접근성을 높여 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현근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사무총장은 "곤돌라는 휠체어를 탄 승객이 바로 평지에서 탑승해 평지로 내릴 수 있는 구조"라며 "조속히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2024년 착공한 서울시의 남산 곤돌라 사업은 현재 멈춰있다. 남산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가족기업인 한국삭도공업 등이 서울시를 상대로 도시관리계획결정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서울시는 지주 설치를 위해 남산 부지를 도시자연공원구역에서 제외하고 근린공원으로 변경했지만 한국삭도공업은 공원녹지법상 구역 변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처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심에선 원고인 한국삭도공업이 승리했다. 서울고법 행정7부의 항소심 선고는 오는 17일 내려진다.
일각에서는 곤돌라가 남산 생태를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서울시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입장이다. 곤돌라 기둥 설치에 쓰이는 숲 면적은 원룸 크기(20㎡) 수준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생태·경관보전지역에는 시설물을 설치하지 않는다"며 "공사에 필요한 자재는 모두 케이블을 통해 공중으로 운반하고 훼손 구간은 모두 기존대로 복원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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