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경제연구센터 제1차 월례포럼에서 온라인 발표 중인 콜린 메이어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사진=서울대 미래경제연구센터 제공


서울대학교 미래경제연구센터(센터장 이지홍 교수)는 1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기업지배구조 및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주제로 제1차 월례포럼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경쟁력 제고를 뒷받침할 바람직한 자본주의 모델과 기업지배구조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미국과 영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이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와 주주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계를 둘러싸고 겪어온 변화와 제도 발전 사례를 살펴보고, 한국 기업의 현실에 대한 시사점을 논의했다.

발제자로는 기업지배구조와 기업 목적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콜린 메이어(Colin Mayer) 영국 옥스퍼드대 사이드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국내외 학자와 전문가 10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했다.

메이어 교수는 사이드 경영대학원 최초 정교수로 부임해 학장을 지냈고 옥스퍼드 금융연구센터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영국학술원(British Academy) 석학회원(FBA)으로 'Future of the Corporation' 프로그램을 이끌며 기업의 목적과 소유·지배구조에 관한 국제적 논의를 주도해 왔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ESG가 아니라 기업의 핵심 전략"

메이어 교수는 '21세기 기업의 목적과 한국에 대한 시사점'(The Purpose of Business in the 21st Century and Its Implications for Korea)을 주제로 발표하며 지난 수십 년 동안 확산된 '주주가치 극대화' 중심의 기업관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자본주의가 기업의 이익을 지나치게 좁게 정의해 왔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노동자·협력업체·지역사회·환경에 발생시키는 비용을 충분히 부담하지 않고 외부에 전가한다면 회계상 이익은 실제보다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메이어 교수는 타인에게 비용을 전가해 얻는 이익은 진정한 가치 창출이라기보다 '가치의 이전'(value transfer)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의 목적을 "사람과 지구가 직면한 문제에 수익성 있는 해결책(profitable solutions)을 제공하되, 사람과 지구에 문제를 만들어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는 사회공헌(CSR)이나 ESG 활동을 본업에 추가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목적을 사업전략과 투자, 소유구조, 보상체계에 연결하는 핵심 경영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대표 사례로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를 들었다. 기업 목적을 단순한 '인슐린 판매'에서 '당뇨 문제 해결'로 확장하면서 병원·의사·대학·정부 등과 협력하고 치료뿐 아니라 예방까지 사업의 관점을 넓혔다는 설명이다. 메이어 교수는 사회문제 해결과 수익 창출이 양자택일 관계가 아니며, 신뢰와 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기업가치로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지배구조 개혁…소수주주 보호와 '장기적 소유구조' 함께 봐야

메이어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이사의 책임 강화와 소수주주 보호를 비롯해 집중투표제, 독립이사 확대,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제한, 자사주 활용에 대한 규율 강화 등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다만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 자체가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최종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소유구조가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등 단기 재무수익을 중시하는 투자자의 영향에 지나치게 노출될 경우 기업의 목표가 장기적인 가치 창출보다 단기 주주가치 극대화에 치우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메이어 교수는 한국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자사주와 관련해 일본의 경험을 소개했다. 과거 일본 기업의 상호출자가 경영진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기업가치를 훼손한 측면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기업지배구조 개혁과 함께 공동 프로젝트나 전략적 제휴 등 기업가치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전략적 주주와 관계를 형성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자사주나 기존 안정주주 구조를 단순히 없애는 데 그치기보다, 기업의 장기적 목적과 전략을 지지하면서 가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주주와 소유구조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누가 지배하느냐'보다 '어떤 목적을 지지하느냐' 중요

메이어 교수는 노보 노디스크와 레고 등에서 볼 수 있는 기업재단을 장기적인 기업 목적을 뒷받침하는 소유구조의 사례로 소개했다. 기업의 장기적 목적을 안정적으로 지지하는 주주가 존재하면서도 다른 투자자와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 역시 "'지배주주를 유지할 것인가 없앨 것인가'라는 이분법보다는 장기 소유의 장점을 살리면서 소수주주와 고객, 임직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구조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한국 기업들이 소수주주뿐 아니라 고객·임직원·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요구에도 점차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은 단순히 누가 기업을 지배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소유주가 어떤 목적과 시간적 관점에서 기업의 장기적 가치 창출을 뒷받침하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포럼 좌장을 맡은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는 "기업은 단순한 이윤 극대화를 넘어 사회·환경 문제 해결에 책임을 지고, 자본주의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지홍 미래경제연구센터장은 "메이어 교수의 연구는 기업이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며 "앞으로도 주요국의 다양한 기업지배구조 경험과 한국 기업의 현실을 함께 살펴보면서 기업의 장기 경쟁력과 가치 창출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바람직한 자본주의 모델과 정책 방향을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콜린 메이어(Colin Mayer) 교수>

기업금융·기업지배구조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옥스퍼드대 사이드 경영대학원 최초 정교수와 학장, 옥스퍼드 금융연구센터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영국학술원 석학회원(FBA)으로 'Future of the Corporation' 프로그램을 이끌었으며, 『Firm Commitment』, 『Prosperity』, 『Capitalism and Crises』 등을 통해 기업의 목적·신뢰·장기 소유구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업 모델을 제시해 왔다.

국내에서도 그의 기업지배구조론은 일찍부터 소개됐다. 2014년 조선비즈 인터뷰에서는 한국 대기업의 승계와 장기적 기업가치 보전을 위한 재단·수탁(trust) 모델을 제안했고, 2015년 매일경제 인터뷰에서는 장수하는 오너기업 사례를 통해 독립재단과 장기적 소유구조의 역할을 강조했다. 2013년 저서 『Firm Commitment: Why the corporation is failing us and how to restore trust in it』은 『왜 우리는 기업에 실망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