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2003년 이라크 파병 이후 23년 만에 미국으로부터 중동 지역 군사 지원 요청을 받으면서 실제 지원 수준과 독자적 파병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이라크 파병 당시와 지금은 전투 종료 여부, 국제사회 대응, 국내 여론 등의 측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자유 항행의 조속한 회복과 중동의 평화·안정을 위한 실질적 기여 방안에 대해서 미 측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현재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백악관 관계자는 6일(현지시각) 미국의소리(VOA)에 "우리는 한국이 역내에 자원을 투입하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미국 측 요청에 따라 군사적 자산 지원에 나선다면 P-8A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해군 특수전전단 폭발물처리반(EOD) 등이 투입 대상으로 거론된다. 다만 정부는 구체적인 투입 자산이나 방식을 확정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군수지원함을 후순위로 조정하고 해상초계기와 EOD, 무인 기뢰 탐색·제거 장치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이란 양측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적 기여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이 이란 전쟁 관련 지원 요청을 받고 "안 하는 편이 좋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란은 한국이 호르무즈에 군 지원을 할 경우 참전으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란 정부 입장을 대변해 온 모하마드 마란디 테헤란대 교수는 최근 레바논 매체 알마야딘에 출연해 "한국이 전쟁에 참여한다면 이란은 한국을 적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군 파견이 이란을 겨냥한 군사개입이 아니라 한국 선박·국민 보호와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 확보를 위한 제한적 기여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현재 상황은 2003년 이라크전 파병 때와 다르다. 우선 이라크전 당시 미국은 3월 20일 전쟁을 시작했고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5월 1일 주요 전투 종료를 선언했다. 한국군 서희·제마부대 1진은 국회 동의 직후인 4월 30일 이라크에 도착해 재건과 의료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반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는 미국과 이란 양국의 군사적 충돌이 지속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대응도 이라크전 당시와 차이를 보인다. 이라크전 개전 이후 스페인과 이탈리아, 일본 등은 재건·안정화 병력을 보냈고 영국과 호주, 폴란드 등 미국 우방국은 개전 초기부터 지상군을 투입했다. 반면 호르무즈 해협 군사 지원의 경우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고 있지만 미·이란 간 전쟁이 끝난 이후에야 군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군사적 대응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파병을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한 국민들의 찬반 여론도 이라크전 때와 다르다. 2003년 4월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을 국회에서 의결할 당시 여론은 파병 찬성으로 기울었다. 앞서 3월 29일 KBS 여론조사에서는 정부의 파병 결정을 이해한다는 답변이 83.8%였다. 국회 표결 결과도 찬성 179표, 반대 68표, 기권 9표였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이 국민의 이익과 직결된다고 설득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 호르무즈 해협 군 지원을 두고는 병력 파병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개혁신당 싱크탱크인 개혁연구원이 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 참여 요청에 '우리 군 병력 파병'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응답은 34.9%, '병력 없이 방어용 무기만 지원'은 31.8%였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은 파병에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정부가 호르무즈 군 지원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소극적인 태도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어 양국 간 다른 현안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쿠팡 사태 등으로 미국 조야에서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 지원 요청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핵추진잠수함 개발과 대미 관세 등 다른 사안에서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호르무즈 해협에 군 자산을 투입하는 문제에 한국 정부가 잘 대처하지 못하면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압박하거나 관세율을 활용한 통상 압박, 핵추진잠수함 추진 제동 등 여러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최측근을 만나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등 외교적인 해결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개혁연구원이 6일 하루 동안 자체 실시했다. 무선 RDD 100% ARS 전화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2.34%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지난 3월5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연기 구름이 솟아오르고 있다. /사진=로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