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대미투자 1호 사업으로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낙점하면서 핵추진 잠수함을 비롯한 한미 협의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가장 느린 협상가"라며 한국을 비판해온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불만을 해소할 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후속 대미투자 사업으로 거론되는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과 호르무즈 해협 군사 지원 문제가 여전히 변수로 남아있다.
8일 정치권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과 오는 18일 엔시날 프로젝트와 미국 내 원전 8기 건설,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 사업 등을 담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엔시날 프로젝트는 223억달러(약 30조원) 규모로 조율됐으며 원전 8기는 1300억달러(약 175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포함하면 20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의 상당 부분이 이행될 전망이다.
엔시날 프로젝트 등 대미투자 윤곽이 나오면서 그동안 진척이 더뎠던 핵추진 잠수함 도입 협의도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대미투자 이행 속도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이 한미 현안으로 번지면서 관련 협의가 사실상 멈췄기 때문이다.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재처리를 다루는 1차 고위급 안보 협의는 지난 1월 예정됐다가 5개월 늦은 6월에 열렸고 2차 협의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정부가 대미투자 이행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천연가스 개발 사업의 세부 사항 조율이 변수다. 한미는 원전 8기 가운데 최소 2기를 한국수력원자력의 'APR1400'으로 건설하고 나머지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으로 짓는 방안을 어느 정도 조율한 상태다. 다만 알래스카 북단 가스전에서 남단까지 약 1300㎞ 길이의 가스관을 잇는 천연가스 개발 사업은 사업성 등을 놓고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가스관이 지나는 지역이 영구동토층인 만큼 막대한 초기 비용이 예상되고 사업 리스크도 커 미국 내 에너지 기업도 참여를 꺼리고 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의 장기화도 새로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전쟁의 출구를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동맹국을 상대로 호르무즈 해협 군사 지원을 압박하고 있다. 백악관 관계자는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의소리(VOA)에 "우리는 한국이 역내에 자원을 투입하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시대]와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군 자산 투입 요청이 핵추진 잠수함 추진과 통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측이 대미투자 이행과 별개로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기여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군사 지원 문제가 한미 관계의 새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 군사 지원은 대미투자 이행보다 따져볼 사안이 많다. 대미투자가 사업성과 경제적 효과를 중심으로 판단할 문제라면 군사 지원은 정치권과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란과의 관계도 살펴야 한다. 군사 지원 수위도 파병과 비전투 군 자산 투입 여부 등을 놓고 결정해야 한다. 이란이 군 자산 투입 자체를 참전으로 받아들일 가능성과 이에 따른 한국의 피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파병을 결정한다면 이란과 외교 채널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 이란과 적대 관계를 형성하거나 대이란 공격 작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며 "미국에는 동맹국으로서 필요한 기여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이란에는 한국의 군사적 기여가 대이란 전쟁 참여가 아니라는 점을 설득하는 정교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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