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사진=뉴시스


한국 경제가 12년간 머물렀던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넘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과 교역조건 개선으로 국민소득이 빠르게 불어난 데다 최근 원화 가치도 강세를 보이면서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사상 처음 4만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단순히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의 경제 규모를 유지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수준에 올라선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힌다. 반면 한때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넘어섰다가 다시 3만달러대로 내려온 나라들도 있다. 한국 경제의 다음 시험대는 4만달러 진입보다 4만달러 안착에 있다는 얘기다.

'5000만·4만달러' 희소성

한국의 1인당 GNI는 2014년 3만달러를 넘어선 뒤 12년 만에 4만달러 진입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3만6963달러를 기록했다. 2024년에는 일본을 앞서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중 6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1인당 GNI가 3만8000달러 초반으로 추산되면서 한·일 간 순위가 다시 뒤집혔다.



올해는 4만달러 진입과 함께 일본을 재추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은이 전날(8일) 발표한 '2026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2분기 명목 GNI는 전년 동기보다 26.4%, 실질 GNI는 15.6%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교역조건 개선이 국민소득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국가별 순위 구도가 유지된다는 전제에서 올해 일본을 다시 앞설 경우 6위권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4만달러 진입이 곧 안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달러로 환산하는 1인당 GNI는 경제성장과 물가뿐 아니라 환율 변화에도 크게 좌우된다. 실제 지난해 1인당 GNI는 원화 기준으로 4.6% 증가한 5257만원이었지만, 원/달러 환율이 4.3% 상승하면서 달러 기준 증가율은 0.3%에 그친 3만6963달러였다. 원화로 늘어난 소득의 상당 부분이 달러 환산 과정에서 상쇄된 셈이다.

일본은 환율과 통계 변화에 따라 국민소득 수준과 국가 간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은은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일본의 통화가치 하락 영향으로 일본의 1인당 GNI가 한국보다 낮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일본의 1인당 GNI가 3만8000달러 초반으로 추산돼 한국을 다시 웃돌았다. 당시 일본이 국민계정 기준년도를 종전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경제 규모가 확대된 것처럼 보이게 된 영향도 있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순위도 고정돼 있지 않았다. 한국은 2020년 처음으로 이탈리아의 1인당 GNI를 앞서며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가운데 7위에서 6위로 올라섰지만 2021년에는 다시 역전당했다. 이처럼 경기와 환율 등 여건 변화에 따라 불과 몇 년 사이 국가 간 소득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마지막 변수 환율…"당분간 안정 국면"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1인당 GNI는 연간 명목 국민총소득을 추계인구로 나눈 뒤 연평균 원/달러 환율을 적용해 달러로 환산한다. 원화로 벌어들인 소득이 늘더라도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 달러 표시 국민소득은 낮아진다. 결국 올해 1인당 GNI 4만달러 진입 여부를 가를 마지막 관건은 연평균 환율의 향방인 셈이다.

올해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컸다.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7월 2일 1555.8원까지 올랐다가 이달 8일 1345.6원까지 내려왔다. 당분간은 환율 흐름도 4만달러 진입에 우호적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기업의 달러 매도 물량이 늘면서 외환시장 수급이 달러 공급 우위로 기울고 있어서다.

이동현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수출기업들의 실적 호조에 따른 환전 물량 유입이 이어지는 가운데 공급 우위의 수급여건으로 원/달러 환율은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1360~1420원에서 등락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책 관점에서 봐도 당장 상승 재료가 두드러지기보다는 추가적인 환율 안정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고 했다. 예상보다 강한 기업발 달러 공급을 감안해 단기 하단을 1300원대 초반까지 열어두면서 4분기 평균 원/달러 환율을 1380원 수준으로 내다봤다.

차영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자금유출입, 한·미 성장격차 및 금리 경로, 당국 기조를 고려할 때 내년까지 원화 강세 압력이 우세해 상단이 무거운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1~2년 이어질 경우 반도체 대기업의 주주환원과 국내 투자에 따른 원화 환전 수요가 해외투자에 따른 자금 유출 압력을 웃돌 수 있다고 봤다.

다만 구조적인 달러 수요는 있다. 차 연구원은 "내국인 투자자금 유출은 고령화와 경상흑자에 따른 대외 순저축이라는 구조적 배경 속에서 15년 이상 이어진 장기 흐름"이라며 "반도체 사이클 종료 이후 다시 원/달러 환율 상승을 이끌 요소로, 잠시 가려질 뿐 사라질 추세는 아니다"고 짚었다.

4만달러 안착 과제…내수·가계로 퍼져야

더 근본적인 문제는 4만달러를 누가 체감하느냐다. 국민소득의 평균값이 4만달러를 넘더라도 그 증가의 수혜가 수출 대기업에만 집중되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 전반의 임금 상승과 이에 따른 내수 소비 증가 등을 통해 사회 전반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으면 통계와 가계 상황 사이의 간극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출 증대의 효과가 하청기업이나 소상공인, 가계 등 내수부문으로 확장되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과거에 비해 약화되고 있다"고 했다. 반도체와 수출 대기업이 끌어올린 국민소득이 임금과 투자, 소비를 통해 중소기업과 내수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4만달러 진입이 경제 전반의 체력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의미다.

4만달러 경제에 안착하려면 환율 충격에 취약한 중소·내수기업의 체력을 끌어올리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이 환위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 주도의 환변동보험 등 환위험관리 지원책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강화해 수입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