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소장품 전달식에서 장훈 선생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날 야구 유니폼과 벨트, 글러브, 모자, 신발 등 10여 종을 기증했다. /사진=뉴시스


재일동포 야구의 상징이자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장훈 선생이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인 3085안타와 504홈런, 통산 타율 0.319. 숫자만으로도 그의 성취는 뚜렷하다. 그러나 장훈이라는 이름이 한일 야구계에 남긴 의미는 기록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신체적 어려움과 시대의 편견을 견디며 스스로 길을 개척한 야구인이었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모닥불에 화상을 입어 오른손 손가락이 심하게 변형됐다. 손바닥의 기능과 악력도 온전하지 않았다. 오른손잡이였던 그는 왼손 타자로 전향해야 했다. 왼손 타자에게도 오른손은 방망이를 끝까지 밀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수 생활에 큰 제약이 따랐지만 그는 불편한 손으로 연습을 거듭하며 타격을 다듬었다. 그가 남긴 기록에는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기본을 끊임없이 반복한 시간이 쌓여 있다.



고인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3년간 일본 프로야구를 누볐다. 타격왕 7회와 출루왕 9회, 최다 안타왕 3회를 차지했고 신인왕과 최우수선수에도 선정됐다. 20시즌 연속 100안타 이상을 기록했으며 9년 연속 3할 타율도 넘겼다. 통산 도루는 319개에 이른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3000안타와 500홈런을 함께 달성한 선수는 지금도 장훈이 유일하다. 정확성과 장타력, 주력을 두루 갖춘 그에게 '안타 제조기'라는 별칭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았다.

고인의 야구 인생에는 재일동포가 겪은 차별의 역사도 함께 새겨져 있다. 당시 외국인 선수 제한 규정 탓에 프로 입단을 앞두고 귀화를 권유받았지만, 장훈은 한국 국적을 지켰다. "조국을 팔면서까지 야구할 필요 없다"던 어머니의 뜻을 따른 것이다. 결국 일본야구기구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동포 선수에게는 외국인 선수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예외 규정을 만들었다. 장훈의 선택과 실력이 제도를 움직이면서 뒤따르는 재일동포 선수들에게도 길이 열렸다. 고인은 은퇴 후 말년에 이르러서야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그에게 야구는 단순한 직업 이상이었을 것이다. 전쟁의 상흔과 가난, 신체적 어려움과 차별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세상과 맞서는 방식이었다. "힘들 때일수록 앞을 보라. 도망치면 거기서 끝이다"라는 그의 말이 무게를 갖는 것도 실제로 그런 삶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고인은 일본 야구의 전설이면서 한국 야구의 든든한 조력자이기도 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특별보좌로 활동하며 한국 야구의 태동기에 힘을 보탰다.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것도 조국 야구에 남긴 발자취를 기리는 일이었다.



고인의 성취는 그 한 사람의 영광에 머물지 않았다. 차별을 겪던 재일동포에게는 자부심이 됐고 뒤따르는 야구인들에게는 도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자신이 쌓은 경험을 한국 야구의 성장에 보탠 것까지, 그의 삶에는 다음 세대를 위한 몫이 있었다. 전설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기록과 그 기록이 많은 이들에게 건넨 용기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