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허가 문제가 시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임상시험 허가를 둘러싼 민원 또는 청탁 문제가 드러나면서다.
<임상시험 등 신약 개발 새치기·유혹, 바이오산업 신뢰 떨어뜨려>
사실 임상시험을 비롯한 신약 개발의 전 과정에는 장구한 시간과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새치기와 편법에 대한 유혹이 자주 생긴다.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는 과정 하나하나에서 엄밀하고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임상시험이나 제품의 승인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의 의무는 제품의 유효성과 안전성 확인이다. 소비자나 임상시험 대상자의 이익과 안전을 지키는 수문장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새치기나 심사 기간 단축 등 숱한 유혹이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의약품의 임상시험과 신약 허가 과정에 이런 '반칙'이 들어오면 인간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 전 세계 신약 허가 공직자 사회에는 외부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과학·양심으로 일관한 깐깐한 공직자의 실제 사례가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칫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었던 약화(藥禍) 사고를 막은 사례다.
<유럽 태아 기형 유발 탈리도마이드, 미국에선 철벽 방어>
1960년부터 2005년까지 45년간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의사·약리학자 공무원으로 일하던 캐나다·미국 이중국적자 프랜시스 켈시(1914~2015) 박사가 주인공이다. FDA는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 의약품·식품·생활용품 등 소비자가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심사하고 규제한다.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해당한다.

켈시 박사의 활약은 1960~61년에 이뤄졌다. 1960년 9월 8일 뉴저지주 캔자스시티에 본부를 둔 제약사 리처드슨-메렐은 '케바돈(Kevadon)'이라는 브랜드명으로 '탈리도마이드'라는 의약품을 미국 시장에 도입하려고 FDA에 신약 허가 신청서를 냈다. 탈리도마이드는 1957년 서독에서 신약으로 허가받았으며, 서독 제약사 그뤼넨탈이 발매해 노인 환자의 진정제 및 항구토제로 판매했다. 진정과 항구토 효과가 있으니 입덧을 막는 효과도 당연히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의사가 임신부에게 입덧 예방약으로 이를 처방했다. 문제는 태아에 대한 기형 유발이나 유산 위험, 임부의 건강에 대한 영향 등 임신 중 사용의 위험성에 대해선 아무런 검토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관련 임상시험도 없었고, 당연히 임부의 사용에 대한 승인도 받지 않았다.
<기형 유발에 관심 많았던 의사 약리학자 켈리, 제약사에 확인 요구>
의사이자 약리학자인 켈시 박사는 FDA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이 약의 허가와 관련한 검토를 맡게 됐다. 제약사 리처드슨-메렐은 하루라도 빨리 탈리도마이드를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려고 FDA에 신속 승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켈시 박사는 탈리도마이드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판매 승인을 1년가량 지속해서 거부했다. 특히 약리학을 전공한 켈시는 태아의 기형을 유발하는 '최기성(催奇性)' 문제에 관심이 컸다. 탈리도마이드가 임신한 여성이 입덧 예방용으로 많이 사용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켈시 박사는 이 문제가 완전히 확인되기 전에는 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보고 제약사에 최기성이 없음을 보증하는 추가 연구나 데이터를 지속해서 요구했다. 당시 FDA는 한 번에 60일 동안만 승인을 보류할 수 있었다. 켈시는 60일마다 제약사에 추가 정보를 계속 요청하는 방법으로 보류 기간을 1년 가까이 늘렸다. 켈시 박사는 제약사 측에 약물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동물 실험도 요청했다. 나중에 리처드슨-메렐은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을 한 결과 선천적 기형을 발견했지만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승인이 자꾸 미뤄지자 미국에서 이를 판매할 리처드슨-메렐은 물론 독일에서 이를 생산하는 제약사 그뤼넨탈까지 나서서 FDA에 신속 승인을 요청했으며 심지어 켈시 박사에게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켈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함부르크대에서 '유럽 1만~2만 탈리도마이드 기형 유발' 논문 발표>
그러던 도중 탈리도마이드의 위험성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사건이 1961년 11월 발생했다. 서독 함부르크대 병원의 소아과 과장인 비두킨트 렌츠 박사가 임신 중인 여성이 탈리도마이드에 노출되면 태아에게 사지나 기타 기형이 발생하는 '탈리도마이드 증후군'의 위험성을 발견해 발표한 것이다. 렌츠 박사가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부에게서 이미 1만~2만 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보고하면서 이 의약품은 그해 말까지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렌츠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기형아의 약 40%가 출생 직후 사망했다. 생존한 아이들도 사지, 눈, 요로, 심장 질환 등의 문제를 겪어야 했다. 탈리도마이드로 인한 가장 흔한 선천적 기형은 사지 단축이며, 특히 팔이 더 자주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심하고 집요한 검토, 외압에 대한 저항이 공무원 영웅 만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45개국에서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1만~2만 명의 기형아가 태어났지만, 미국에선 리처드슨-메렐이 의사들에게 판촉용으로 배포한 물량을 복용한 일부 임부에게서 17명의 기형아가 태어나는 데 그쳤다. 안전에 대한 기준이 지금보다 느슨했던 당시에는 허가 과정에 있는 약물을 의사들에게 배부할 수 있었다.
세심하게 최기성 문제를 검토하고 제약사에 보완을 요구한 덕분에 탈리도마이드의 판매 허가와 약화 사고를 막은 켈시는 일약 FDA 공무원의 영웅이 됐다. 1962년 연방공무원 공로상을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켈시는 미국 연방공무원 공로상을 받은 두 번째 여성으로 기록된다. 켈시는 45년 동안 FDA에 근무하다 2005년 90세로 은퇴했다.
미국 사회는 켈시에게 예우를 다했다. 2015년 101세로 세상을 떠나자 뉴욕 타임스는 추모 기사에서 '해로운 의약품으로부터 대중을 살린 조용한 구원자'라는 제목으로 칭송했다. FDA는 의약품 안전에 기여한 직원에게 수여하는 상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켈시 의약품안전우수상'은 지금도 매년 '제2의 켈시'를 찾아 상을 주고 있다. 전문성과 책임감, 공익 우선, 국민에 대한 봉사, 공정감으로 무장한 공무원 말이다.
<임상시험 승인에 청탁 오염되면 거대 바이오 시장 균열>
문제는 현재 한국에서 벌어진 임상시험 민원 또는 청탁 사건에서 관심의 초점이 조기 승인으로 '경제적 이익'을 얼마나 얻었느냐에만 맞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약 임상시험 허가에서 핵심적인 부분인 유효성(효과의 여부와 정도)과 안전성(부작용의 여부와 정도)에 대한 검토가 충분했는지에 관해선 관심이 크지 않아 보여 우려된다. 특히 안전성은 임상시험 과정에서 참가자의 생명과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다. 만일 임상시험 허가가 충분한 검토 없이 나왔다면 위험한 일탈에 해당한다.
이는 한국 임상시험 산업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상급종합병원 등 우수한 임상시험 실시기관과 숙련된 임상시험 전문 연구진, 국가 임상시험 지원재단(KoNECT) 등 지원체제를 고루 갖춘 글로벌 임상시험 거점 국가다. 높은 경쟁력과 국제적인 명성 덕분에 한국의 임상시험 산업은 세계 6위 수준을 자랑하며, 바이오 부분의 반도체에 해당한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런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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