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부터)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 2차 조정 기일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20억원과 1000억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와의 관계에서 사용한 돈을 두고 등장한 숫자다. 최근 최 회장 측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측 법률대리인 이상원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항고하면서 두 수치의 간극이 재조명되고 있다.

2023년 11월 23일 1000억원이라는 숫자가 처음 등장했다. 노 관장이 김 이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준비기일 직후 이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2015년 이후부터만 보더라도 최 회장이 김 이사에게 쓴 돈이 1000억원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튿날 방송 인터뷰에 출연해 김 이사와 가족, 티앤씨재단 등에 들어간 돈과 주택 관련 비용 등을 공개했다.



최 회장 측은 곧바로 형사 대응에 나섰다. 이 변호사가 금융거래 자료를 왜곡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형법과 가사소송법,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약 1년 뒤 이 변호사를 검찰에 송치했고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9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이날 검찰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겠다며 항고했다.

최 회장 측은 검찰의 불기소 판단이 1000억원이라는 수치 자체의 사실 여부를 충분히 따지지 않았다고 본다. 이혼소송 과정에서 확보된 금융거래 내역을 보면 최 회장과 김 이사가 실제 공동생활비로 사용한 금액은 약 20억원 수준인데도 이 변호사가 김 이사와 관련이 없는 지출까지 포함해 1000억원으로 부풀렸다고 최 회장 측은 주장한다. 특히 이 변호사가 각 자금의 실제 사용처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단순한 계산상의 차이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핵심 쟁점은 최 회장이 수감 중이던 기간 개설된 국민은행 계좌다. 해당 계좌에서 총 204억원이 지출됐다. 최 회장 측은 이 계좌가 노 관장을 위해 개설됐고 지출액 상당 부분도 노 관장에게 돌아갔지만 이 변호사가 김 이사 관련 지출에 포함해 1000억원을 산정했다고 한다.



최 회장 측은 어린이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티앤씨재단 등에 낸 출연금·기부금도 1000억원에 포함됐다고 주장한다. 긴급구호와 장학·교육·복지 등에 사용된 공익 목적의 자금까지 김 이사에게 증여한 돈으로 봤다고 강조했다. 주택과 미술품을 1000억원 산정에 포함한 것도 문제 삼았다. 이혼소송에서는 해당 자산이 재산분할 대상으로 다뤄졌지만 노 관장 측이 이를 김 이사에게 제공한 경제적 이익에도 포함했다는 것이다.

이번 항고를 계기로 2023년 고소 당시부터 제기돼 온 이 변호사와 노 관장의 특수관계도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판사 출신인 이 변호사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부터 노 관장 측 대리인단에 합류했다.

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핵심 쟁점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문제가 새롭게 등장했다. 노 관장 측은 모친 김옥숙 여사가 보관한 '선경 300억' 메모와 선경건설 명의의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이 SK 측에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이를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를 인정하는 근거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노 관장 측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달했는지는 오래된 일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이라는 민감한 내용을 스스로 공개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고 이 변호사와 노 관장의 관계도 주목받았다.

이 변호사는 6공의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장관의 사위로 박지영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이 부인이다. 박철언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이다. 노 관장과 박 이사장은 모두 사적 모임인 미래회 멤버로 알려져 있다. 김흥남 전 미래회 회장이 2016년 악플 부대를 만들어 최 회장 및 김희영 이사장에 대한 조직적 악플을 달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당한 바 있는데(2019년 유죄 확정) 이 당시에도 이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다.

한편 최 회장 측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검찰의 불기소 처분 이후에도 해당 처분이 1000억원 주장의 진실성을 인정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며 왜곡이 이어지고 있다"며 "항고를 통해 다시 판단을 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