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조종사노조가 서열순위 산정 방식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박찬규


오는 12월 통합 대한항공 출범을 앞두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의 시니어리티(서열순위)를 둘러싼 갈등이 투쟁으로 번지고 있다.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KAPU)은 15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의 일방적인 통합 서열 추진 철회를 촉구했다. 노조는 앞서 지난 7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고 오는 22일까지 나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불만이 시작된 건 2024년 단체협약과 2025년 임금협약 병합교섭이다. 노조는 총 30차례 교섭에도 합의하지 못했다고 했다. 임금인상률은 노조가 3.3%, 회사가 2.7%를 제시해 격차가 0.6%포인트다. 노조가 제시한 3.3%의 근거는 공시된 회사 감사보고서의 임금인상률이다. 노조는 임금 인상 외에도 10시간 이상 비행 후 현지 30시간 휴식 확대와 출두 시각부터 비행수당을 산정하는 방안도 요구하고 있다.



현재 가장 큰 쟁점은 항공사 통합 이후 조종사들의 서열순위다. 이는 일정 자격을 갖춘 부기장 가운데 누가 먼저 기장이 될지를 정하는 기준인 만큼 기장 승격 외에도 기종 전환과 향후 경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항공업계에서는 기장과 부기장은 개인별 면허 종류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연간 3000만원가량의 임금 격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순위 결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한항공 민간경력 조종사들이다. 민간 출신 조종사가 부기장으로 입사하려면 대한항공은 약 1000시간의 비행경력을 요구한 반면 아시아나는 약 300시간이 기준이다. 군경력 조종사는 별도의 경력 인정 체계를 적용해 단순 비교가 어렵지만 대한항공 민경력 조종사들은 입사 전 더 많은 비행시간을 확보한 데 따른 경력이 통합 서열에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보다 민간 출신 조종사 비중이 높다.
문형철 대한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 /사진=박찬규


문형철 대한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은 이날 "초기 교육훈련 기간이 8개월에서 최대 27개월에 달함에도 회사는 최초 입사일이 아닌 훈련 수료 후 부여되는 정사번을 통합 서열 기준으로 적용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피로도 문제도 언급했다. 문 위원장은 러시아 공역 폐쇄 이후 유럽 장거리 노선의 비행시간이 크게 늘어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노조는 런던 노선 비행시간이 14시간을 넘는 사례가 있고 10시간 이상 비행한 노선에는 미주 노선과 마찬가지로 현지 30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행수당 역시 조종사가 공항에 출두해 대기하는 시간까지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조종사노조는 이 문제를 조종실의 CRM(Crew Resource Management·운항승무원 자원관리)과 비행 안전 문제로 연결한다. 기장과 부기장이 서로의 판단을 견제하고 보완해야 하는 조종실에서 서열을 둘러싼 불신이 쌓이면 협업과 의사소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열에 대한 회사 측 판단은 조금 다르다. 대한항공은 합병 전 양사의 군·민간 조종사 간 상대적인 승격 서열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통합안을 마련한 만큼 기존 기준을 적용하면 대한항공 민경력 조종사가 아시아나 민경력 조종사보다 평균 3년3개월 먼저 기장 승격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전체 조종사의 90% 이상은 오히려 승격 시기가 빨라진다는 것이 회사 측 주장이다. 승진·서열 기준은 사용자의 고유 인사권에 해당하며 외부 컨설팅 등을 거쳐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아시아나 조종사노조 역시 통합 과정에서 조종사 간 갈등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구체적인 시니어리티 기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양사 조종사노조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같지 않은 만큼 통합 서열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노사 문제를 넘어선다. 이에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민간 출신 조종사들의 채용 기준 차이로 인한 서열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은 조직 안정성을 저해하고 안전비용 등 보이지 않는 비용 발생이 우려된다"며 "당장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쟁의 조정 신청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회사 측의 객관적인 통합안 제시와 함께 노조 간 자율 협의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