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6월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스1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이 개별 기업의 기술 대결을 넘어 국가 단위의 '풀스택' 구축으로 확장하고 있다. 누가 더 뛰어난 AI 모델을 개발하느냐가 아니라 AI를 구동하는 전력부터 반도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모델, 서비스에 이르는 전 과정의 역량을 체계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AI 풀스택은 AI를 만들고 학습해 서비스하는 데 필요한 가치사슬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것을 말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AI 산업 전체를 ▲에너지(전력) ▲칩(반도체·가속기) ▲인프라(데이터센터·클라우드) ▲모델 ▲애플리케이션(서비스) 등 5개 층으로 집적한 '5단 케이크'론을 통해 AI 풀스택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AI의 막대한 연산량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고성능 AI 반도체 확보가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도 필수적이다. 독립적인 AI 모델, 이를 소비자·산업 현장에 연결할 서비스 체계도 갖춰야 한다. 추가로 개발에서부터 운용에 이르기까지 AI에 특화된 전문 인재 육성도 뒷받침돼야 AI 생태계 전체가 완성된다.

핵심은 이들 층이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유기적으로 맞물려 연동한다는 데 있다. 풀스택 생태계 구축이 국가 차원의 AI 전략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AI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평가를 받는 미국과 중국은 국가 단위의 풀스택 경쟁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미국은 엔비디아·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오픈AI 등 민간 기업이 AI 기술과 플랫폼의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는 가운데 미국 정부도 반도체 생산과 AI 인프라 확충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특히 AI를 단순 산업 경쟁력을 넘어 국가안보로 인식해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에 중국을 배제하는 한편 동맹국가의 참여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AI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맞서 자립을 중심으로 스택을 쌓고 있다. AI 반도체와 관련 기술의 국산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자체 AI 모델과 클라우드, 산업용 AI 생태계를 키우는 방식이다. 경로는 다르지만 미·중 모두 AI를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안보를 좌우할 핵심 기반으로 보고 풀스택 생태계 전반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한국도 풀스택 구축 역량이 충분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지난 6월 한국을 찾은 젠슨 황 CEO는 한국이 메모리부터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독보적인 역량을 갖춘 풀스택 국가라고 짚었다. 제이슨 권 오픈AI 최고전략책임자(CSO) 역시 지난해 한국 내 첫 사무소 개설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AI 풀스택 생태계는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시장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한국이 AI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선도하고 있고,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공장과 데이터를 보유한 최적의 피지컬 AI 학습 현장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평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9일 4박 5일간의 방한을 마치고 9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기 앞서 팬들에게 사인한 뒤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스택을 하나하나 놓고 보면 공백도 뚜렷하다. 칩 분야에선 HBM 등 고부가 메모리의 경쟁력은 압도적이지만 연산칩(가속기)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뒤처진다. AI 데이터센터나 클라우드처럼 추가로 시설을 확충하거나 기술을 고도화해야 할 영역도 존재한다.

정부가 6월 29일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에 2035년까지 총 18.4GW 규모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클라우드 기술력 확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것도 부족한 인프라를 보충하려는 구상이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2040년까지 추가로 대형원전 19~20기에 해당하는 26.8GW 규모의 전력 수요도 충당해야 한다.

신성규 리벨리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반도체 시설이나 데이터센터를 빨리 시공하더라도 전력 인프라가 잘 계획되고 받쳐주지 않으면 그냥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며 "AI 대형화에 따라 전력과 에너지 문제를 가장 크게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독자적인 AI 모델 개발과 산업현장에 빠르게 접목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업스테이지, SK텔레콤, LG AI연구원이 정부의 '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프로젝트(독파모)' 2단계를 통과해 내년 초 최종 평가를 앞두고 있지만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등 미국 빅테크에 비해 성능이 뒤처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인재 육성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AI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스타트업 분야에서 인재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AI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외국과의 보상 격차 등으로 해외유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AI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AI 인재 이동 지수는 -0.36(10만 명당 0.36명 순유출)이었다.

최수환 리얼월드 전무는 "한국의 AI 인재풀은 좋지만 미국과의 보상 격차가 10배가량 나는 비대칭이 있다. 특히 한국 기술자들이 스톡옵션에 대한 기대치가 낮고 회수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